벤처금융레터

'23년 12월호

Market Watch

Vol.'23-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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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투자? 성장 분야가
서로 연결되는 ‘공통의 시장’ 발굴!

“벤처투자,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이해”

신한벤처투자 상무 조재호

. 고영민  사진. 박진우

“리디, 에이피알 등의 포트폴리오 업체들이 조 단위 기업가치를 형성하며 유니콘이 되었을 때 가장 뿌듯했습니다.” 현재 신한벤처투자 VC본부에서 디지털미디어, 소프트웨어/서비스, 산업기계 부문 등의 투자를 담당하는 조재호 상무는 벤처캐피탈 업계에 몸담은 지 어느덧 20년을 맞았다. 조 상무는 막 태동하기 시작한 시장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남들보다 한발 빠른 투자를 함으로써 투자기업이 성장하도록 돕고 관련 시장을 이끄는 경험이야말로 VC만의 매력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그의 투자 이야기를 듣다 보면, 투자심사역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장 변화를 빠르게 인지해 의미 있는 규모의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를 발굴해 내는 ‘기민함’이 그의 장점으로 보인다. 남다른 통찰로 성공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조재호 상무로부터 그간의 투자 경험과 VC로서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VC 업계에 오시기 전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신한벤처투자 VC본부에서 심사역으로 11년째 근무하고 있는 조재호입니다. 이전에는 8년간 삼성벤처투자에서 디지털미디어와 S/W 부문 전략투자를 주로 담당했는데,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해외 투자 비중이 높았습니다. 벤처투자 업계에 들어온 지는 이제 19년 차가 되었네요.

학부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VC 업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주로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개발·기획 분야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벤처기업이었는데요, 작은 회사여서 반도체 후공정 ‘레이저 마킹’ 장비의 H/W, 광학 설계에서부터 제어 S/W, Windows 응용 프로그램까지 개발에서 납품, 유지보수에 이르는 모든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인터넷 버블 시기를 거치며 온라인 물류 S/W를 개발하는 ‘Nextem’이라는 사내 창업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운 좋게 다니던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며 우리사주를 받고 코스닥에 상장하는 기회도 얻었지요. 이후 삼성테크윈 정밀기기연구소에서 생산라인을 최적화하는 S/W를 개발하고, 연구소 전체의 S/W 개발 프로세스를 컨설팅하는 업무를 하던 중에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게 됐고, 졸업 후 VC 업계에 오게 됐습니다.

투자심사역으로서 VC 업계에 발을 디디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투자심사역이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VC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된 건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학부 2~3학년쯤에 ‘벤처’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퍼지며 붐이 일었고, 봉사활동을 통해 알게 된 선배님 한 분과 함께 학교 창업동아리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후 동아리방에 찾아온 창투사 선배님을 뵙게 되고 “이런 직업이 있었구나”라고 처음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습니다.

졸업 후 병역특례로 시작하게 된 반도체 장비,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을 통해 중소기업과 제조업 환경의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공학을 전공하고 MBA 과정을 통해 경영 전반에 대한 지식을 쌓게 된 제 경험과 전공, 적성을 가장 잘 융합할 수 있는 영역이 벤처투자 분야라고 판단해 금융업으로의 경력 전환 및 VC에 진입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됐던 것 같습니다. 경영대학원 재학 마지막 학기에 LG전자 디지털미디어 기획팀과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삼성벤처투자에 합류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돼 2006년부터 심사역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벤처투자 심사역은 각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성과에 따라 인생의 큰 상승세(Upside)도 가져올 수 있는 정말 장점이 많은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새롭고 신기한 것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다양한 기술과 시장을 계속 관심갖고 공부해야 하는 이 직업에 더 큰 매력을 느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한벤처투자’는 2000년 두산그룹이 설립한 창업투자회사 ‘네오플럭스’에서 출발했고, 2020년 신한금융지주의 계열사로 편입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신한벤처투자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네, 2020년 신한금융그룹에 인수되며 회사 이름이 신한벤처투자로 변경됐습니다. 저는 10년 이상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주변에서 제가 이직한 줄 아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신한벤처투자는 2024년 8월 말 기준, 총 1.8조 원이 조금 넘는 18개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VC, PE, 시너지(SI), 글로벌 4개의 투자 본부가 있으며, VC 본부는 내부적으로 성장시장에 투자하는 VC1 부문과 세컨더리/소부장/바이오 영역에 특화돼 있는 VC2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한금융그룹 내에서 액셀러레이팅을 담당하고 있던 ‘신한 퓨쳐스랩’이 신한벤처투자로 합류해 초기, 육성, 성장, 스케일업, 세컨더리, LP자산 유동화, SI 전략, 글로벌에 이르는 벤처투자 전 영역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차별화된 대형 투자기관으로 성장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대표펀드매니저로서 운용하고 있는 투자조합은 무엇이고, 주로 어떤 분야에 관심갖고 투자를 진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간 투자한 기업 중 기억에 남거나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투자에 대한 경험도 듣고 싶습니다.

현재 총 3개, 3,500억 원 규모의 투자조합을 대표펀드매니저로 운용 중입니다. 2015년 결성한 ‘네오플럭스 기술가치평가 투자조합’은 신기술 업체를 주목적으로 600억 원 규모로 결성됐고, 현재 펀드 규모 2배 수준으로 배분해 IRR(내부수익률) 20% 수준의 우수한 청산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7년 결성한 ‘신한-네오플럭스 에너지 신산업 투자조합’은 4차 산업혁명 업체 투자를 주목적으로 600억 원 규모로 결성됐고, 2021년 결성된 ‘신한벤처 투모로우 투자조합 1호’는 2,300억 원 규모의 대형 벤처투자 조합으로 AI, 로봇 등 분야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리디’, ‘에이피알’ 등의 포트폴리오 업체들이 조 단위 기업가치를 형성하며 유니콘이 되었을 때 가장 뿌듯했습니다. 막 태동하기 시작하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미리 예견하고, 투자한 기업과 함께 관련 시장 성장을 리딩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저 스스로에게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총 4개의 포트폴리오 회사가 상장 심사 통과됐고, 3개 업체가 IPO를 마친 상태입니다. ‘스튜디오삼익’, ‘에이피알’, ‘이노스페이스’ 3개 업체가 상장됐고, ‘클로봇’은 10월 IPO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삼익’은 국내 홈퍼니싱 사업을 온라인 중심으로 혁신해 부동산 경기 침체기에도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인데 장에서 평가가 높지 못해 아쉬운 상황이고, 국내 최초 민간 우주발사체 기업인 ‘이노스페이스’는 앞으로의 민간사업 성과를 더욱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봇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도 다수 집행했는데, 이번에 ‘클로봇’이 상장하게 돼 기쁘며 상장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내 양자컴퓨팅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에스디티’, 항공우주 핵심 모듈을 공급하고 있는 ‘키프코우주항공’, 금융 교육사업을 리드하고 있는 ‘어스얼라이언스’, 글로벌 1위 3D 패션 SaaS 업체 ‘클로버추얼패션’ 등에 투자한 바 있으며,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모두 좋은 성과를 만들어주셔서 매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투자기업 중 지난 2월 상장한 미디어커머스 기업 ‘에이피알’이 큰 주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시리즈A 단계에 투자한 유일한 VC로 알고 있고 그만큼 높은 멀티플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데, 에이피알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투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경험과 지식의 우위를 통해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동시에 2~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를 찾는 것이 제가 잘할 수 있는 투자 접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와 같은 성장 분야가 서로 연결되는 ‘공통의 시장’을 발굴하는 것을 투자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대상이 되는 업체나 제품·서비스가 너무 많거나 시장이 파편화되고 있는 과정이라면 해당 분야는 투자하기가 적합하지 않은 타이밍일 수 있어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고성장을 기대하고 있는 분야는 투자 기업가치가 향후 성장성을 지나치게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내가 보고 있는 관점의 우위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삼성에서 오랫동안 ‘디지털미디어’ 사업부 투자를 담당하며 다수의 글로벌 디지털미디어, S/W, Ad-Tech 벤처에 대한 투자를 검토·집행했고, 이를 통해 온라인에서 미디어/Video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혁신되는 변곡점을 인지했습니다. 즉, 마케팅에서 영상 미디어 활용의 중요성이 크게 확대되는 시점이 단기간 내 도래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모바일 커머스 트래픽 증가에 맞춰 ▲영상 미디어 ▲Ad-Tech ▲Life Style ▲온라인 커머스 사업이 서로 연결되는 시장을 적극적으로 찾던 중에 에이피알 창업자와 CFO를 만나게 돼 첫 투자자로서의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초창기 에이피알의 사업은 기존 뷰티 업체들과 다른 점이 많이 있었음에도, 창업자들은 아직 신규 사업모델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었죠. 시장에선 마케팅을 잘하고 비누로 소위 대박을 낸 신생 화장품 회사로만 인지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에이피알은 2가지 측면에서 단순한 커머스 회사 또는 화장품 회사라고 보기에는 분명한 차이와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우선, 제품을 개발·기획하는 순서가 기존 회사들과 달랐습니다. 전통 회사들의 경우 연구·개발→ 생산 환경 구축→ 제품 양산 진행→ 유통 채널 확보→ 마케팅 기획의 순서로 사업을 진행했다면, 에이피알은 가장 먼저 자체 SNS/유통채널(자사몰)을 구축한 후→ 확보된 채널 및 고객에게 최적화된 마케팅 콘셉트를 기획→ 해당 콘셉트에 가장 잘 맞는 제품을 소싱·생산 하는 정반대의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었죠. 제품을 먼저 만들고 누구에게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고, 고객을 먼저 정의·확보한 후 적합한 마케팅 콘셉트를 정할 수 있어야 제품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는 고객을 획득하는 접근 방식이 ‘혁신적’이었습니다. SNS 채널을 통해 파악된 니즈를 기반으로 제품을 기획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제품의 매력을 단기간에 각인시킵니다. 소비자와의 직접적 소통으로 자사몰 구매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이런 방식을 고객 확보, 브랜드 홍보, 유통, 가격 비교 관련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경쟁력을 높이는 차세대 커머스 사업모델로 판단했습니다. 제가 찾던 시장에서 누구보다 사업을 잘해 줄 거라 판단했고, 앞서 말씀드린 관점을 바탕으로 어떤 투자보다도 빠른 의사결정과 투자 집행을 했습니다.

다양한 투자기업들을 소싱하면서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상무님만의 투자철학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성장시장’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다른 변수들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상황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 먼저 참여만 해도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자연히 투자 성공 가능성도 매우 높아집니다. 투자철학은 말씀드리기 부끄럽고 주관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쉽게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벤처투자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개별 시장이나 회사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우선순위가 높은 주요 변수에 대한 가능성을 나눠 생각해 보는 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습니다.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쌓이면, 가능성의 핵심 변수들이 축적되고 이 가능성의 덩어리들이 중첩되고 얽히게 되는 곳이 그 시점 최고의 투자처가 아닐까 합니다.

남들보다 한발 빠른 투자를 하기 위해 심사역으로서 평소에 노력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투자심사역이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오전, 점심, 오후, 저녁의 일정을 꽉 채워 사람들을 만나며, 쌓이는 문자 회신과 받지 못한 전화 콜백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생활을 한 달만 해도 자연스럽게 많은 시장과 기술을 ‘상대 평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소싱과 투자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곤 했습니다.

좋은 시장과 기술, 역량 있는 회사를 ‘절대적’으로 판별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특정 시점의 시장과 기술을 ‘상대 비교’해서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의 최선을 찾아내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기준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과 노하우가 아직 충분치 않다고 생각된다면, 일단 약속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정을 빈틈없이 채워보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 수는 있어도 굉장히 쉬운 접근법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는 데 있어서 한 가지만 사족을 붙이자면, ‘업무 미팅’을 하는 기회보다는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투자 건이, 이 기회가 나에게 오게 되는 이유가 항상 있게 마련이고, 사무적인 관계에서 특별한 기회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습니다.

VC로서 향후 벤처투자 활성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으신지요. 또 현 생태계에서 VC의 역할이 어떻게 변하면 좋을까요?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과 목표도 궁금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많은 사업모델과 성장시장, 벤처업체를 찾아 좀 더 경쟁력 있는 회사로 성장하도록 돕는 VC 본연의 임무를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 가장 큰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VC 역할 측면에서는 국내 벤처투자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보니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 등의 선진 경영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VC들이 많은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쌓고 설득력을 키워 참견과 간섭이 아닌 도움이 되는 의사결정의 조언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목표 관련해서는 우선 몸담고 있는 신한벤처투자를 업계 내에서 국내 탑티어 투자회사로 인식시키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 진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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