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금융레터

'23년 12월호

Market Watch

Vol.'23-4Q

Scroll Down

박성용 대표는 스스로를 ‘농부형 투자자’라 부른다. Pre-IPO의 빠른 수익 대신 극초기 기술기업에 씨를 뿌리고, 후속 투자와 산업 연결까지 직접 설계하며 수확을 기다리는 방식을 25년간 고수해왔다. 올해 9월 에트리홀딩스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정통 딥테크 투자만으로 멀티플 3배에 육박하는 성과가 증명된 현장을 만났다. 그가 믿는 공식은 단순하다. 기술의 차별성과 창업가의 실행력, 두 축을 깊이 평가하고 긴 호흡으로 함께 가는 것.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에트리홀딩스 대표이사로서 역할과 주요 업무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2000년 벤처투자업계에 입문해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펀드매니저, HB 인베스트먼트 CIO, 현대투자파트너스 대표이사를 거치며 약 25년간 기술벤처 투자에 전념해 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9월 에트리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했습니다.

현재는 ETRI의 기술을 활용한 연구소기업 설립 등 기존 사업을 계승·발전시키는 한편, 설립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VC 부문 투자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민간 VC에서 공공기술 투자기관 대표로의 이동은 업계에서 이례적입니다. 이러한 전환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VC 출신으로서 공공기술 투자기관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어떤 강점과 도전과제를 경험하고 계신가요?

저는 꾸준히 딥테크(Deep-Tech)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에 집중해 왔습니다. 현대투자파트너스 대표이사 재임 이후 직접 투자회사를 창업할지 고민하던 중, ‘만약 한다면 VC 보다는 조금 더 앞단 영역인 AC(액셀러레이터)를 시도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에트리홀딩스 대표이사 공모 소식을 접했고, 제가 고민하던 영역 대부분 (초기투자, AC, 공적 기술 사업화)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저 없이 지원했습니다.

다만 에트리홀딩스는 작년에 VC 라이선스를 획득한 만큼,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VC 투자 실무 경험이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공공기술 투자기관이면서도 VC적 사고와 시스템을 결합하여 공공기술 사업화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 저의 핵심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민간 VC의 수익 추구와 공공기술 사업화의 공익적 미션, 두 영역의 균형을 어떻게 잡고 계신가요?

에트리홀딩스는 지난 15년간 130여 개 초기·설립기업에 약 160억 원을 투자해 왔으며, 현재까지 200억 원(IPO 140 억 원, 구주 매각 60억 원)을 회수했습니다. 보수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잔여 자산이 약 250억 원 수준으로, 멀티플 3배에 가까운 성과를 달성한 셈입니다.

제가 합류하기 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우수한 성과이며, 1~2년 이내에 1억 원 투자로 100억 원 이상 회수가 기대되는 기업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바이오나 플랫폼 기업 등이 아닌, 화합물 반도체 분야의 정통 딥테크 기업 투자로도 충분한 수익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입증할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즉, 본업에 충실한 투자가 오히려 공익성과 수익성을 함께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VC로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신 배경과 당시 주로 투자하셨던 섹터가 궁금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투자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고, 그 경험이 현재 공공기술 투자에 어떤 통찰을 주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KAIST 졸업 후 통신회사인 데이콤에서 근무하며 일상적인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중, 우연히 벤처캐피탈이라는 업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동기의 추천으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벤처투자 업계에 뛰어들었고, 주로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개발 업체에 집중했습니다. 반도체, 통신, 소재, 메디컬 디바이스,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활동을 해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현재 코스닥 상장사인 방사성 의약품 개발회사 셀비온입니다. 처음 회사를 방문했을 때는 말 그대로 1인 기업으로, 대표이사 혼자 오피스텔에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던 극초기 단계였습니다. 대표는 KAIST 화학 박사 출신으로 창업 실패를 경험한 뒤, 서울대 핵의학과 교수인 고등학교 친구의 기술을 가지고 재도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담당 심사역은 반대했지만, 저는 차별화된 기술력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창업가의 경험이 결합하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기술의 차별성’과 ‘그것을 구체화할 창업가의 능력’, 두 가지를 동시에 깊이 평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지금도 공공기술 사업화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민간 VC 시절의 네트워크와 심사 노하우가 현재 어떤 시너지를 만들고 있나요?

연구소기업 설립을 통한 공공기술 사업화도 결국은 후속 투자 유치 없이는 지속 성장이 어렵습니다.

민간 VC 시절의 경험과 네트워크는 이러한 후속 투자를 연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투자 유치 역량이 있는 연구소기업 발굴 및 성장 지원의 핵심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태어난 기술이 시장에 서 숨 쉬려면, 발굴하는 손과 키우는 손이 따로 놀아선 안 된다.

에트리홀딩스는 VC 라이선스를 보유 중인데, 기술지주회사이면서 동시에 VC인 이중적 정체성을 어떻게 활용하실 계획이신가요?


에트리홀딩스는 신기술창업전문회사, AC, VC 등 세 가지 라이선스를 모두 보유한 국내 유일의 기관입니다. 이는 창업에서 보육, 성장까지 전 단계를 직접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는 특히 VC 기능을 강화해, 공공 R&D 성과의 사업화와 투자 연계를 하나의 선으로 잇는 체계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다만 내부에서는 ‘공공기술 투자기관이 VC처럼 움직이는 것이 맞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VC적 사고와 시스템을 결합해야 공공기술 사업화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가지 기능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기술 발굴부터 스케일업까지의 전 과정을 직접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가 정착되면, 에트리홀딩스는 공공기술 사업화의 새로운 롤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에트리홀딩스 로고
에트리홀딩스 대표이사 박  성  용

공공기술 기반 투자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가요? 포트폴리오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기 위한 요건도 궁금합니다.

공공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장기적 관점에서 개발됐다는 점입니다. 단기적인 시장 수요에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필요성이 보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시장이 먼저 찾는 기술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한계는 시장 진입 속도와 사업화 감각의 차이에 있습니다. 기술 중심의 시각에서 출발하다 보니 초기 시장 대응이 다소 느릴 수 있죠. 공공기술 투자기관이 민간 VC와 협력하면, 자금 운용의 효율성과 시장 감각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모든 투자기업이 유니콘이 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기술의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 시장과 조화롭게 성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다만 딥테크 기반의 정부출연연 기술기업이라면, 시장 수요에 맞는 방향 전환과 적절한 후속 투자, 그리고 경영 실행력을 갖춘 팀이 더해질 때 유니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술의 우수성에 시장 적합성과 실행력을 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연구소기업, TIPS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VC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 전략이 있다면요?

에트리홀딩스는 여기에 연구진과 심사역을 직접 연결하는 기술–시장 교류 시스템을 더하고자 합니다.

에트리 연구진과 딥테크 초기투자 전문 심사역이 함께 참여하는 비공식 기술 세미나를 준비 중인데요, 이를 통해 심사역은 새로운 기술과 기업을 조기에 발굴하고, 연구원은 시장의 피드백을 통해 기술개발 방향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내부에서 발굴된 기술이 외부 자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공동 GP펀드 운용을 병행해 후속투자 연계도 강화할 예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대덕연구단지 내 타 출연연으로까지 이 시스템을 확장해, 공공기술–민간투자 간 브릿지 허브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입니다.

대표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농부의 마음으로 투자해야 한다’라는 철학이 인상 깊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민간 VC에 있을 때부터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던 말이 있습니다. 딥테크 초기기업 투자는 반드시 ‘농부의 마음’ 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가꾸며, 긴 시간 동안 묵묵히 기다립니다. 그만큼 인내와 정성이 필요한 과정이죠.

기술벤처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이 사업으로 꽃피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면, PF나 Pre-IPO처럼 막바지 단계에 들어가는 투자는 일종의 ‘밭떼기 장사’와 비슷합니다. 농부가 몇 달간 땀 흘려 키운 배추를 상인이 통으로 사서 바로 두 배 가격에 팔아버리면, 농부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몇 달 동안 고생해서 번 돈이나, 저 사람이 한 번에 벌어가는 돈이나 비슷하니까요. 초기투자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실무적 고생도 하고, 마음의 고생도 합니다. 반면 Pre-IPO 투자는 막판에 들어가서 비교적 빠르게 수익을 실현하죠. 물론 그것도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요.

문제는 농사짓던 사람이 한번 빠른 수익의 단맛을 보면, 다시 밭에 나가서 땡볕에 땀 흘리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초기투자를 하던 사람이 구주 투자 쪽으로 가면, 다시 초기기업 투자로 돌아오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농사만 짓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건 아닙니다. 초기기업 투자자는 단지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사람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지속적인 후속투자, 2차·3차 지원, 그리고 좋은 산업 파트너와의 연결을 통해 자신이 처음 심은 씨앗의 가치를 스스로 키워야 합니다.

결국 농부의 마음이란, ‘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꾸며 오랜 시간 함께 성장하는 자세’, ‘긴 호흡으로 기술과 사람을 함께 키워내는 자세’를 뜻합니다. 이 철학은 제가 민간 VC 시절에도 강조해 왔고, 지금 에트리홀딩스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씨앗을 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싹이 트기 전 몇 번의 가뭄을 견디고, 수확 후에도 직접 시장까지 나가 값을 매기는 투자자는 드물다.
박성용 대표가 말하는 ‘농부’란, 단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다.

공공연구기관의 기술로 창업을 준비하는 연구원들이나 기술이전을 고려하는 기업에, VC 출신 대표로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기술 기반 벤처가 첫 아이템으로 바로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벤처는 거대한 원양어선처럼 한 번에 큰 고기를 잡는 일이 아니라, 좁은 강에서 통발을 던져 여러 번 시도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에 그 통발을 던지느냐입니다.

AC나 VC는 그 ‘몇 번의 기회’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창업팀은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2~3번의 도전 안에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메인으로가기메인으로가기 구독하기구독하기 프린트하기프린트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