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금융레터

'23년 12월호

Market Watch

Vol.'23-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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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만 하면 망한다”라는 우려가 가득했던 2015년, 범용 투자가 주류였던 시장의 흐름을 거슬러 BNH인베스트먼트는 홀로 ‘바이오 전문’의 길을 선언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우려는 ‘탁월한 선택’ 이라는 찬사로 바뀌었다. ‘깊이’가 곧 투자의 실력이 되는 시대. 척박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으로 실력을 증명해 온 김명환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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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 업계에 이공계 출신 심사역이 크게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어떠신가요?

이공계 인력의 유입은 사실 오래된 흐름입니다. 제가 1997년 기술보증기금 (KIBO)에 입사할 때도 신입의 절반이 이공계였으니까요. 하지만 과거와 지금의 결정적인 차이는 ‘기술의 깊이’에 있습니다. 20~30년 전만 해도 투자 대상 기술의 변화 속도가 완만해 상경계 출신도 대응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해당 산업에서 직접 경험을 쌓은 사람이 확실히 유리합니다

이제는 현장 경험 없이 서류만으로 기술을 심사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최근 VC 업계의 채용 공고를 보면, 바이오 섹터는 상경계 전공자를 아예 뽑지 않는 수준이 됐습니다. 우리 회사도 최근 채용한 인력들을 보면 약사, 바이오 전공 변리사, 제약사 경력에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를 갖춘 인력 등 대부분 이공계 기반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의 경험 없이는 투자 심사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업계에서 “바이오 전문 VC 1세대”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1.5세대 정도가 맞는 것 같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바이오 투자를 하셨던 선배님들이 있었으니까요. 다만 “바이오 섹터만 투자하겠다”라고 선언한 전문 VC로서는 저희가 처음이었습니다. 과거에는 한 회사에 바이오 심사역이 한 명 있을까 말까 했고, 한 명이 투자를 결정하면 다른 회사들이 숟가락 얹듯 따라 들어오는 식이었습니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2005년입니다. 기술특례 상장 제도가 도입되면서 실적이 없어도 기술력만으로 상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비로소 “바이오 투자를 해서 회수할 수 있겠다” 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각 VC마다 바이오 팀이 생기기 시작했고, 저희는 2015년에 바이오만 투자하는 전문 회사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범용의 시대에 던진 승부수, ‘전문점’의 뚝심으로 바이오의 깊이를 증명하다.

2015년 창업 당시, 많은 VC가 범용 투자를 지향할 때 홀로 ‘바이오 전문’을 선언하신 전략적 판단은 무엇이었나요?

어느 조직이든 연차가 쌓이면 독립을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마침 함께 창업할 분들과 의기투합이 됐고, 당시 바이오 투자 시장이 조금씩 살아나던 때였습니다. “지금 아니면 타이밍을 놓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떤 콘셉트로 살아남을 것인가” 였습니다. 이미 20년 넘은 대형 VC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똑같이 경쟁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우리는 바이오만 한다”였습니다. LP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작은 하우스가 “짜장면도 잘하고 볶음밥도 잘한다” 라고 하면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차라리 “우리는 청국장 하나만 끝내주게 합니다”라고 해야 전문성이 각인됩니다. 그 생각으로 아예 회사 이름에 “바이오앤헬스케어”를 못 박아 넣었습니다. 내부에서도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도록요.

물론 국내외 고령화 추세로 인해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이 필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신약 개발사만이 아니라 디지털 헬스케어, 메디컬 에스테틱, 웨어러블 재활 로봇, 원격 진료까지 포트폴리오를 폭넓게 다변화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처음부터의 콘셉트였습니다.

10년 넘게 한 우물을 파서 실적을 내다 보니, 이제는 시장에서 ‘바이오 하면 BNH’라는 인식이 확고해졌고, 이러한 전문성 덕분에 펀드 결성 시에도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바이오 투자에서 대표님만의 판단 기준이 있으신가요?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는 결국 “팀”을 봅니다. 바이오는 기술개발에서 임상, 사업화로 이어지는 과정이 서로 다른 영역입니다. 훌륭한 연구자가 반드시 임상이나 사업 개발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창업자가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팀을 갖추고 있는지, 혹은 그런 팀을 구축할 의지와 계획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또 한 가지는 유연성과 개방성입니다. 저희가 임상이나 사업 개발 경험이 있는 인재를 소개해 드릴 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팀이 있는 반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거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후자가 좋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창업자가 독선적이면 위기가 왔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평소에 투자자와 열린 소통을 유지하는 창업자만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BNH를 대표하는 투자 사례로 휴젤이 꼽힙니다. 당시 700억 원에 가까운 대규모 베팅을 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나요?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피부과, 성형외과 밀집 인프라와 비급여 시장에 주목했습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건강뿐만 아니라 외모에도 지갑을 열기 시작합니다. 개발 기업 입장에서는 피부과와 성형외과가 밀집해 있어 빠르게 임상과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비급여 항목을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한 환경입니다. 이런 환경이 다른 나라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해당 분야에서 우리나라 의사들의 뛰어난 의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1위가 될 수 있는 산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처음 약 150억 원을 투자했고, 후속 투자까지 합산하면 총 700억 원 가까이 투자하게 됐습니다. 비상장 기업 단일 투자로는 당시에도, 지금도 쉽지 않은 규모였죠

투자 후에는 KTB 네트워크 출신 중 기업체 CFO 경험이 있는 분을 직접 영입해 IPO 준비와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시스템 정비를 함께 했습니다. 본사가 춘천에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닭갈비 먹었다고 할 정도로 창업자이신 문경엽 박사님과 긴밀하게 소통했습니다. 저희한테는 정말 고마운 분이고, 큰 기회를 주신 분입니다.

”좋은 투자는 기업을 살리지만, 나쁜 회수는 기업을 죽인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상장 후 VC들이 보유 지분을 처리하는 방식이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2대 주주급 지분을 장내에서 매일 대량으로 던지면 주가가 내려가고, 회사 평판이 망가지며, 후속 자금 조달도 어려워집니다. 비상장 시절에 열심히 도와주다가 상장 후에 괴롭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희는 휴젤 지분 16%를 한 주도 장내에서 팔지 않았습니다. 10% 이상의 수익 할인을 감수하면서 모건스탠리, UBS 같은 글로벌 장기 투자 펀드에 블록딜로 넘겼습니다. 국내 증권사에 팔면 다음 날 그 물량이 다시 시장에 나와 주가를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오히려 외국인 매수가 들어오면서 주가가 올랐고, 문경엽 박사님이 나중에 “이걸 다 시장에 뿌렸으면 감당이 안 됐을 것”이라며 고마워하셨습니다. 단 몇 퍼센트의 추가 수익을 위해 마른 수건 짜내듯 회수하면 그 기업이 회복하는 데 1~2년이 더 걸립니다. 그리고 그 회사가 성장해서 다시 좋은 기업이 됐을 때,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요.

노터스 투자에서 언급하신 ‘청바지 전략’도 인상적입니다. 어떤 사례였나요?

골드러시 때 누가 금을 캘지는 모르지만, 청바지는 반드시 팔린다는 논리입니다. 신약 개발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동물 실험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그 수요는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꾸준히 늘어납니다.

처음 만났을 때 구리시 컨테이너에서 동물 피가 묻은 가운을 입고 일하던 젊은 수의사들이었습니다. 업계 후발 주자였지만 그 열정을 보고 확신을 얻었습니다. 투자 후에는 유능한 CFO 를 영입해 드리고, 저희 투자 기업들을 노터스의 고객으로 직접 연결해 드렸습니다. 말 그대로 영업사원을 자처한 거죠. 덕분에 선발 주자를 제치고 업계 1위가 됐고, 상장도 성공했습니다.

상장식 날 저녁, 수의대 동문 100여 명 앞에서 대표님이 마이크를 잡고 저를 직접 불러 “이분이 아니었으면 이런 상장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라고 하시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수익률보다 그런 순간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금광을 쫓기보다 길목을 지키는 전략, ‘청바지’ 정신으로 불확실성을 확신으로 바꾸다.

최근 K-바이오가 글로벌 빅파마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강점과 보완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한국 바이오의 성과가 최근 들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계약금만 8,000만 달러에 달해 외부 펀딩 없이도 운영 가능한 스타트업들이 나오고 있고, 다국적 제약사에 의미 있는 규모로 기술이전을 성공한 기업들은 예외 없이 거래소 상장 심사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강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인적 역량입니다. ADC처럼 새로운 신약 플랫폼 트렌드에 한국 인력들이 굉장히 빠르게 대응합니다. 둘째는 임상 인프라입니다. 대형 병원이 한 도시에 이렇게 밀집된 나라가 없습니다. 여기에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빅파마들이 중국 기술 도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외부 요인도 있습니다.

다만 아직 부족한 것은 경험치입니다. FDA 규정에 맞게 처음부터 끝까지 임상을 완주해 본 경험을 쌓은 팀이 아직 많지 않습니다. 그 부분만 보완된다면 FDA 신약 허가를 연간 10건씩 받는 시대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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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기업 CEO들에게 가장 강조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투자자와 세세하게 소통하십시오. 창업자들은 자신의 기술, 즉 20%의 강점을 가지고 나옵니다. 하지만 나머지 80%, 시스템, 자금 관리, 인사, 사업 개발은 미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80%를 외부 전문가와 투자자의 도움으로 채워가야 동아리가 아닌 진짜 회사가 됩니다.

투자자의 분기 보고 요청을 경영 간섭으로 느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상장 예비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상장사가 되면 수천 명의 주주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합니다. 그것을 미리 연습하는 과정이고,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대표 본인이 회사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6개월 뒤 자금이 바닥날 것을 모르고 있는 대표도 있거든요.

자금 이야기는 반드시 미리 하셔야 합니다. 돈이 떨어지기 두 달 전에 갑자기 연락하면 이미 늦습니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부터 투자자와 소통하며 준비해야 협상력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10년 후 BNH인베스트먼트는 어떤 하우스로, 대표님은 어떤 투자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작년 인터뷰에서 “AUM 1조”를 언급했는데,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목표가 됐습니다. 현재 운용자산이 4,000 억 원 수준이니 10년 안에 1조원을 달성하는 것이 하나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한 섹터만 파고들어도 대형 하우스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저희 이후 바이오 섹터를 표방하는 후발 VC들이 생겼는데, 어려움을 겪은 곳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도 “이 길로 가면 된다”는 이정표가 되고 싶습니다.

투자 기업 대표들에게는 “그 VC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불편하더라도 계속 소통하고 관여하는 투자자로 남는 것, 그리고 2015년에 저를 걱정하셨던 분들이 “내 생각이 틀렸구나”라고 하실 수 있도록 결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제 가장 큰 동기이자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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