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회사라는 상품을 거래하는 것으로, 여타 다른 상품의 거래와 같이 거래 상대방 간의 협상력에 따라 거래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합병되는 회사의 가격은 합병가액과 합병비율로 표시되는데,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해외 주요국의 경우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의 산정을 합병하는 회사들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상장법인 간의 합병 그리고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의 합병 시 합병가액의 산정 방법에 대해 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법에서 정하는 독특한 제도는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미성숙했고 상장법인의 수도 적었던 시기에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직접 합병비율 조정을 권고하는 등 합병 내용의 실질적 심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면서 시장주가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개정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구체적인 산식의 변화만 있을 뿐 여전히 법에서 합병가액을 정하는 규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주가에 의해 획일적으로 산정되는 합병가액은 공정한 합병가액의 산정과 투자자 보호라는 당초 법 제정 목적과는 달리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법에서 정하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본 후 합병가액을 자율화하되 투자자 보호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한 추가적 개선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주가는 시장에서 평가된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합병가액 산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과 회사 사이의 정보비대칭으로 인해 시장이 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으며, 가격은 기업의 내재가치 이외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매일 변동한다. 또한 회사의 합병 결정에는 두 회사를 합병하면서 얻게 되는 경영 효율화, 연구 개발의 시너지 등이 고려되는데 이는 개별기업의 주가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은 가치다. 따라서 시장주가에 의해 산출되는 자본시장법상의 합병가액은 소멸되는 피합병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현행법상의 합병가액 산정방식이 피합병회사의 가치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하여 합병가액의 산정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미국의 실제 합병가격과 자본시장법의 합병가액 산출 방식으로 계산한 합병가액을 비교해보았다. <그림 1>은 2019년 1월부터 2023년 4월까지 미국의 상장법인 간의 합병 총 333건에 대하여 소멸회사의 주가를 이용한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 따른 기준시가를 산출해 실제 거래된 합병가격과 비교한 것이다. 이를 보면 자본시장법에 따른 합병액이 유사한 기업들 간에도 실제 발표된 합병액에는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의 시가총액 규모가 유사해 주가에 근거한 합병액은 유사하게 산출된다 하더라도 기업 간의 이질성으로 인해 합병에서 평가되는 소멸회사의 가격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합병가격의 수준을 보면 실제 합병가격이 자본시장법에 따른 기준시가 이상인 경우가 전체의 86.2%(287건)으로 자본시장법에 따른 합병가액이 피합병회사의 가치를 낮게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개별기업의 시장주가가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일수록 실제 거래액과 자본시장법에 의해 산출된 합병액의 괴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시장에서 공유되지 않은 기업의 내재가치 정보, 기업의 잠재력, 성장가능성 등이 합병가액의 결정요소로 작용해, 주가를 이용해 산출하는 자본시장법상의 합병가액과 실제 거래액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을 수 있다. 반면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은 시장에서 기업의 가치가 충분히 판단되었고,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내재가치가 적어 자본시장법상의 합병가액과 실제 합병가액의 괴리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2)
시장주가만을 기준으로 하여 획일적으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는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의 규제로 인해 주주들의 주식가치가 적절하게 평가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여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자본시장법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의 계산방식도 시장주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합병에서 정당한 가치보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멸회사의 주주에게 청산가치 이상을 보장해야 하는데, 시장주가가 순자산가치에 현저히 미달하는 경우에도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의해 산정되었다는 이유로 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법에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정한 주요 목적은 투자자 보호에 있다. 법원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 정한 합병가액의 입법취지를 “주권상장법인의 경우 수많은 투자자가 관련되어 있어서 합병가액을 규제함으로써 투자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현행법에 따른 합병가액 산정이 획일적이라 하더라도 투자자 보호라는 당초 입법취지를 달성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합병시점의 선택에 있어서는 소수주주보다 지배주주의 의견이 더 크게 반영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2018년부터 2022년 12월 말까지 발표된 모든 상장사 간 합병(16건)을 살펴본 결과, 합병가액은 모두 자본시장법에 따른 기준시가로 결정되었다.3) 해당 기간 존속회사와 소멸회사의 주가 수익률을 보면, 합병 발표 전 1년 전부터 누적 시장조정수익률은 –16.0%로 나타났다. 이는 합병시점이 소수주주에게 불리하게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4) 대법원에서도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승인 이사회 직전 삼성물산 주가는 회사의 적정가치를 표시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서, 주식매수가격의 기준시점을 합병일이 아닌 제일모직의 상장 전일로 하여 주가를 산정하도록 결정하였다(대법원 2022. 4. 14. 자 2016마5394 결정).
이러한 실제 사례들을 보면서 투자자들은 일정 시점의 주가를 신뢰하기 어렵게 되고, 합병가액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지배주주가 시세조종 등 별다른 위법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합병의 시점’을 선택할 수 있다 보니 소수주주에게 불리한 시기에 합병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 우리나라 상장법인 간 합병은 모두 계열사 간 합병인데, 의도적으로 일반 계열회사의 주가를 띄우거나 억누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시가는 정확한 잣대가 되지 아니한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장법인 간 합병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데, 최근 5년간 주권상장법인의 합병 총 520건 중, 상장법인 간 합병은 16건으로 전체 3.1%에 불과하다. 또한 이 16건은 모두 계열사 간 합병으로, 독립적인 당사자에 의한 합병인 비계열사 간 합병은 전무하다. 최순영·김종민(2018)에서도 1999년에서 2016년 사이 금융회사를 제외한 상장사 간의 합병 106건 중 존속회사와 소멸회사가 서로 독립적인 경우는 10건(9.4%)으로 조사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에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정하고 있어 합병하는 회사들의 자율적 교섭으로 합병가액을 대략적으로 정했다 하더라도, 최종 합병가액은 법에 의해 이사회결의 전일에 정해지게 된다. 이사회 결의일 또는 계약체결일 중 빠른 날의 전일을 기산일로 하여 직전일까지의 종가를 거래량으로 가중산술평균하여야 하므로 이사회 결의일 직전에 합병비율과 그에 따른 합병가액이 확정된다. 만약 사전에 협의한 합병가액과 실제 확정된 합병가액이 괴리가 클 경우 합병이 성사되기 어렵고, 결국 회사는 합병계약을 해제하고 적절한 시점을 기다려 다시 합병을 추진해야 하는데, 이는 실무상 비현실적이다. 합병계약에 이르기까지 기업실사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게 되는데, 결국 합병 여부가 법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이사회 결의일 전 주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회사는 합병을 주저하게 된다. 지배구조나 사업구조 재편 같은 요소가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 계열사 간 합병은 상대적으로 합병비율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으나, 특히 기업가치만을 기준으로 거래를 하는 비계열사 간 합병은 합병비율과 그에 따른 합병가액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리스크의 영향을 더 받게 마련이다.
회사가 자율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고려하여 합병비율을 산정하되, 그렇게 산정한 이유와 그 비율의 공정성을 회사가 입증하도록 하여 시장의 평가를 받게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외 주요국의 입법례에 비추어 볼 때도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직접 법에서 규제하는 것보다 합병하는 회사의 경영진이 공정한 합병비율을 도출할 수 있도록 간접적인 규제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합병하는 회사의 이사회가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해 협상하여 합병비율을 선정하고, 산정방식과 합병가액의 적정성에 대한 이사회의 의견 등 합병 관련 주요 정보를 시장에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시를 검토한 결과 주주의 이익을 해할 수 있는 합병으로 판단될 경우 주주들이 합병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절차적으로 보호하는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고, 계열사 간의 합병에서는 그러한 공정성을 위한 절차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5)
미국의 경우 SEC는 합병과 관련하여 다양한 보고서를 요구하는데, 특히 주주총회 이전에 주주들의 합병 찬반의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제공되는 보고서인 DEFM 14A 양식에는 합병과 관련하여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합병의 배경, 경과와 합병가액 적정성을 포함한 합병의 긍정적·부정적 요인 관련 이사회 의견, 합병에 대한 임원의 이해관계, 합병 자금 조달, 외부 전문가의 의견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합병 관련 또 다른 공시서식인 S-4에서는 거래 조건, 위험 요소, 비율, 추정 재무 정보 및 인수 대상 회사와의 중요한 계약에 관한 정보를 포함할 것을 요구한다. 영국의 경우 합병의 효과, 중요한 이해관계에 미치는 영향, 합병의 내용, 합병비율의 법률적/경제적 측면의 검토내용과 결과 등이 포함된 이사회 설명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하고(회사법 제908조), 독립된 외부 전문가의 의견6)도 함께 공시하여야 한다(회사법 제909조). 독일 역시 합병보고서에 합병목적, 합병비율과 합병교부금, 합병계약서에 대한 법적·경제적 설명과 근거를 요구하며 특히 합병하는 회사의 기업가치 평가 시 특별한 어려움과 합병이 주주의 지분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이 담기도록 하고 있다(조직재편법 제8조). 일본의 경우 법에서 합병대가의 산정방법과 그 상당성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계열회사 간 합병의 경우 소멸회사 주주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한 조치에 대한 내용7)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회사법 제782조). 더불어 금융상품거래법에 따른 주요사항신고서와 유가증권신고서에 합병비율, 산정방법, 외부기관 자문여부 및 그 내용을 기재하는데 특히 존속회사/소멸회사별로 타당성 확보 및 이해 상충 방지를 위한 조치내용을 포함하여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 입법례를 참고하여 상법 또는 자본시장법의 상장법인 특례규정을 개정하거나 공시서식을 개정하여 더 많은 정보가 투자자들에게 제공되도록 하고, 합병의 타당성과 공정성에 대해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합병비율의 구체적 산정근거와 적정성에 대한 이사회의 의견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하고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합병이 지분관계 등 중요한 이해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공시하도록 하고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독립적 외부평가, 독립위원회의 심의를 통한 합병가액 결정) 등 회사가 취한 공정성 담보방안을 함께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하여야 한다.
합병가액 산정방식 등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사전에 공시된 경우, 주주들이 이를 확인하고 불이익을 입을 우려가 있으면 문제제기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해외 주요국의 입법례에서 인정하고 있는 합병유지청구권, 합병검사인제도, 합병관계자의 손해배상책임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다만 모든 합병에 이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의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을 경우 주주의 요청에 의해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1명의 주주가 요청할 경우 허용되는 단독주주권이 아니라 일정 지분율 이상의 주주가 요구할 때 인정되는 소수주주권으로 도입하여야 한다. 사실상 합병의 불공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사례는 적은데, 이를 모든 합병에 요구한다면 도리어 합병이 저해되고 일부 주주의 문제제기로 대다수 주주가 피해를 입는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합병가액을 자율화하되, 계열사 간 합병과 비계열사 간 합병을 나누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기업가치를 토대로 하는 합병가액의 산정방식은 동일하게 하되, 이해관계자 간 거래의 경우 합병가액 산정과 합병절차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까지는 법에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정하고 있었으니 회사 입장에서 그 적정성이나 타당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으나, 이를 자율화할 경우 계열사 간 합병에서 회사는 공정성을 더 입증하려 할 것이다.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시장은 대주주의 영향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볼 것이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찬성을 얻기 위해, 그리고 유지청구권이나 합병검사인 등의 소수주주권 행사를 피하기 위해 회사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합병가액의 적정성과 타당성을 입증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합병가액의 자율화 및 공시강화, 주주의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합병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제도 개선이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