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벤처금융 연구노트’에서 다를 주제는 VC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에 대한 논문을 정리한 내용이다. 보통 이런 주제라면 팀이냐 아이디어냐의 토론이나 연구가 많은데, 저자들은 팀/아이디어도 물론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요소 외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 논문의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라는 요소를 살펴보는 것이다. 펀드의 라이프타임 초반과 후반의 VC들의 의사결정은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흔히들 VC들에게 중요한 딜 소싱에 있어서 누구에게 소개받았느냐에 따라서 그 딜을 검토하는 데 쓰는 “시간”은 달라지지 않을까?
유럽의 한 VC가 실제로 검토하였던 모든 딜 정보와 투자 정보를 데이터로 활용한다. 이 데이터의 장점은 VC들이 투자하지 않은 혹은 검토 초반에 탈락된 딜 정보들까지 모두 포함된다는 것이다.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VC들은 보통 인사이더, 즉 가까운 네트워크를 통해 소개받은 딜일수록 검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펀드의 라이프타임 후반부에는 평균적으로 딜을 검토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대략 알려진 수치에 의하면 VC들은 본인들이 받은 딜들의 약 1%에 투자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 해에 모든 VC가 투자하는 기업의 수는 약 2백만 개라고 하니, 얼마나 투자유치를 하는 스타트업들이 많은지 그리고 투자 의사결정이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많은 VC 연구들은 VC의 투자 의사결정을 단면적으로 바라본다. 팀과 아이디어는 좋았는지,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 있는 기업이었는지 이런 단면적인 요소들로 VC 투자 의사결정을 연구한 논문은 많다. 이 논문의 차별점은 VC들의 투자를 결정하는 속도, 즉 “시간”이라는 요소를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시간”은 꼭 의사결정의 소요 시간뿐만 아니라 펀드의 라이프타임, 즉 “시간이 소요될수록 VC들의 의사결정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라는 일반적인 데이터로는 살펴보기 힘든, 꽤 신선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VC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각각 스테이지를 거치는 딜들의 통계도 흥미롭다. 처음에 들어온 딜들 중에 필터링을 거쳐서 약 20%가 남게 되고, 남은 20%의 20%(전체의 4%)가 듀 딜리전스(Due Diligence)까지 간다고 한다. 그리고 듀 딜리전스까지 간 4개의 딜들 중 1개 정도가 투자(전체의 1%)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단계별 통계가 역시 이 필터링/듀 딜리전스/투심 및 투자 단계에서 각각 VC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필터링 스테이지에서는 창업자의 백그라운드가 중요했다면 투자 단계에서는 팀이 아닌 제품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의 첫 번째 가설은 펀드의 라이프 사이클에 대한 주장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펀드의 투자금이 투자가 많이 될수록 VC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시간(필터링→투자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질 거라는 주장이다. 그 이유는 첫째, 이미 펀드 대부분이 투자가 된 만큼 포트폴리오 회사에 관련된 일도 늘어났기에 추가로 딜 검토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미 포트폴리오들에 투자하면서 생겨난 추가 제약들이 있기에 투자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풀이 제약된다는 점에서 ‘맞다, 아니다’를 더 빨리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의 두 번째 가설은 딜 소싱의 소스와 관련이 있다. VC들에게 물어봤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딜 소싱. 저자들은 어떤 소스에서 딜이 왔느냐가 VC들의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크게 딜 소스를, 창업자들이 직접 연락온 “콜드콜 딜”, 그리고, 컨설팅이나 은행, 로펌 등 브로커들에게 소개받은 “브로커 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이더, VC의 네트워크 안에서 소개받은 “인사이더 딜”, 이렇게 세 분류로 구분한다.
저자들은 창업자들이 직접 연락온 “콜드 콜”의 경우, VC들의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이 비교적 짧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브로커 딜”보다 “인사이더 딜”에서 시간을 더 많이 쓸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필터링 스테이지가 지난 이상, “인사이더 딜”이 “브로커 딜”이나 “콜드콜 딜”에 비해 투자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은 필터링 스테이지를 지날 때보다 투자 단계에서도 “소개”를 통해 VC들의 검토를 받을 경우, 투자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사실, 반대의 의견, 즉 필터링 때는 “인사이더 딜”이 빨리 통과되지만, 투자 단계에서는 딜 소스가 그렇게 영향을 안 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주장은 내 기존 생각과 조금 달랐다).
연구에 사용한 데이터는 유럽의 어느 VC가 한 펀드의 라이프타임동안 받은 2,383개의 딜들을 샘플로 삼는다. 이 딜들을 검토하는 동안 VC의 파트너들이 쓴 미팅로그(약 7,284개의 문단에 해당하는 내용), 그리고 스타트업들의 개별 성격을 변수로 삼아 분석을 진행한다. 이 VC는 유럽과 미국의 Life Science 스타트업들의 초기 투자자로서 투자율은 약 0.7%였고, 평균 투자 금액은 6M Euro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시기에 따라 파트너의 수는 4명과 7명을 왔다 갔다 하였다.
결과 변수는 투자 결정에 쓰인 시간을 달로 잰 변수다. 간단한 통계로 보면, 2,383개의 딜들 중 약 20%가 필터링 스테이지까지 통과하였고, 통과한 전체의 16.3%가 듀 딜리전스까지였다. 마지막으로 약 3.7%의 딜들이 마지막 단계인 투심 및 투자 단계까지 도착하였다. 최종적으로는 17개의 딜(약 0.7%)이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주요 연구 변수로는 “펀드의 투자액”, 즉 펀드 전체의 얼마가 이미 투자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와 딜 소스, 즉 누가 이 딜을 소개하였는가, “콜드콜”, “브로커”, 그리고 “인사이더” 이렇게 코딩을 하였다. 통제변수로 사용된 변수들은 “전체 받은 딜 수”, “지역”, “파트너 수”, “파트너들의 경력”, 그리고 “VC들의 현재 검토 중인 딜 수” 등을 포함하였다.
먼저, 간단한 통계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필터링 스테이지에서는 “브로커 딜”의 비중이 가장 높았는데, 점점 단계가 진행될수록 “콜드콜 딜”의 비중이 그에 비해 더 증가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딜을 검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6개월이었고, 가장 검토가 오래 걸린 딜은 무려 35개월이었다.
먼저, 첫 번째 결과로, 펀드의 투자액이 많이 투자될수록 투자에 걸리는 시간은 약 25% 줄어들었다. 이는 처음 펀드의 시작에 비해 후반부에는 투자 검토에 걸리는 시간이 약 1/4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결과는 투자 소스에 따른 투자 검토 시간의 변화다. 흥미롭게도 “인사이더 딜”의 투자 검토 시간이 길 것이라는 것은 예측했으나, “콜드콜 딜”을 검토하는 시간이 “브로커 딜”을 검토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다는 점이 의아했다. “브로커 딜”에 비해 “인사이더 딜”은 투자 검토 시간이 약 17%나 더 길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과로는 “인사이더 딜”이 투자받을 가능성이 다른 딜 소스들에 비해 높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결과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연구이지만, VC들 입장에서는 생각해 볼 만한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된다. 펀드의 라이프 사이클에 시간을 적게 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까. 그에 따라 펀드 초기에 투자한 스타트업과 펀드 후반에 투자한 스타트업의 투자 결과는 어떻게 다를지 혹은 비슷할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딜 소스가 창업자에게 바로 온 “콜드콜 딜”일 경우, VC 입장에서 “인사이더 딜”에 비해 적은 시간을 쓰는 건 이해되지만, 그로 인해 더 간과하고 넘어간 부분은 없는지, 반대로 “인사이더 딜”에 시간을 더 많이 쓰는 것은 효율적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결국은 “Warm Intro”를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진부한 결론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