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은 창업과 벤처투자의 양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뿐더러 거시경제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남겼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과감한 확장적 재정정책 및 통화정책으로 신속하게 거시경제의 총수요를 회복시켰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완화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지나치게 오래 유지한 탓에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또한, 팬데믹 이후 각국의 봉쇄조치와 국경폐쇄 등으로 발생한 공급망 병목현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발발은 국제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과 곡물 가격의 추가 인상을 초래하여 인플레이션 압박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에 대응하여 2021년 말부터 통화 긴축 속도를 빠르게 높여왔으며, 물가상승률을 연준의 목표 수준인 2%대로 되돌리기 위해 전념할 것임을 공언하였습니다. 2022년 3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이후 5월에는 0.5%p를 인상한 빅스텝, 6월에는 0.75%p 인상의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즉 금리인상 속도는 매우 이례적으로 빠른 수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이후의 통화정책 정상화는 2013년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의 경우 약 6년에 걸쳐 서서히 통화정책을 정상화하였습니다.
이례적으로 급격하게 이루어진 고금리 시대로의 전환은 국내외 벤처투자시장에도 여러 가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본 기고문에서는 이러한 시장조정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 자금이 줄어들었는지와 그에 따른 여파를 살펴보겠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도 급격한 고금리로 인한 스타트업 자금 경색의 여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요인과 정책적 시사점을 살펴보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먼저 고금리로 인한 벤처투자시장 추이를 살펴보겠습니다. 2021년까지 국내외 벤처투자시장은 코로나19 시대의 확대재정정책 및 저금리 통화정책을 배경으로 유동성이 풍부하였고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벤처투자시장은 2021년 7조 6,802억 원으로 역대 최고 벤처투자를 달성하였습니다.
구분 | ’17년 | ’18년 | ’19년 | ’20년 | ’21년 | ||
---|---|---|---|---|---|---|---|
1~12월 | 투자금액 | 23,803 | 34,249 | 42,777 | 43,045 | 76,802 | |
전년 대비 | 증감 | - | +10,446 | +8,528 | +268 | +33,757 | |
증감률 | - | +43.9 | +24.9 | +0.6 | +78.4 | ||
투자 건수 | 2,417 | 3,150 | 3,713 | 4,231 | 5,559 | ||
건당 투자 | 9.8 | 10.9 | 11.5 | 10.2 | 13.8 | ||
피투자기업 수 | 1,266 | 1,399 | 1,608 | 2,130 | 2,438 |
이에 정부는 이제는 양적 성과를 바탕으로 민간이 자생력을 갖고 주도하는 시장으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하며, 모태 펀드 예산을 줄이고 대규모 민간자금 유입을 위한 유인책을 마련하는 등의 변화를 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 세계 모험자본시장은 2022년 고금리로 인한 조정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가장 선진화된 민간 주도의 벤처투자시장으로 평가할 수 있는 미국 시장을 살펴보면 2021년 4분기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가파르게 감소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2021년 4분기 85.6억 달러의 벤처투자 규모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2년 4분기 32.4억 달러까지 크게 감소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로 2021년 4분기 정점을 달성한 후 하락하는 추세였다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두 가지 차이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감소 속도가 훨씬 완만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감소가 3분기간 지속된 이후 2022년 4분기 한국 시장은 다시 소폭 반등하였으나, 미국은 지속하여 더 빠르게 벤처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분기별 벤처투자의 정점을 찍었던 2021년 4분기와 고금리 이후인 2022년 4분기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벤처투자 규모의 증감률을 계산했을 때, 한국의 경우 –43%였으며, 미국은 이보다 약 19%p 더 하락한 마이너스 62%의 시장 위축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급격한 벤처투자시장 위축은 추후 서술하겠지만 결국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반면 한국 시장은 비교적 완만하게 연착륙하였고, 2022년 4분기에는 약간의 회복탄력성도 보여주었는데 이는 모태펀드의 완충작용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완전한 민간 주도의 벤처투자시장으로서 경기변동에 대해 연착륙을 유도할만한 공적자금이 부재하여 한국보다 가파르게 감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이러한 시장조정기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스타트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산업별로 살펴보았을 때는 저금리 및 코로나 시대에 가장 크게 증가했던 분야가 가장 크게 감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예상하실 수 있듯이 IT 분야입니다. 한국과 미국 시장 모두에서 IT 분야의 투자가 가장 크게 감소하였습니다. 다만 워낙 크게 투자가 성장했던 분야이기 때문에 감소가 전에 크게 성장했던 만큼은 아니어서 여전히 전체 투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장조정기에 가장 큰 조정이 이루어진 분야는 바이오 및 의료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및 의료 분야의 경우 시장확장기에 증가했던 양에 비해 시장조정기에 더 크게 감소하였기 때문입니다.
업력별로 살펴보았을 때는 초기기업보단 어느 정도 스케일업이 이루어진 중후기 스타트업이 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2년 벤처투자 동향에서 업력별로 벤처투자 추이를 볼 때, 업력 3년 이하의 창업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만 유일하게 증가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초기기업 투자는 2021년 대비 7.8% 늘어난 2조 50억 원으로, 최초로 2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즉 2022년의 벤처투자 감소는 거의 중후기 스타트업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체적으로 5조 원에 가까운 규모의 투자감소가 중후기 기업에서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스케일업 또는 회수 단계의 스타트업, 즉 자금 수요의 크기가 그만큼 큰 기업에서 오히려 자금 공급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고금리에 따른 상장시장의 위축에 의한 영향도 큽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실리콘밸리 은행의 파산이라는 나비효과가 발생하였는데, 미국의 덩치가 있는 스타트업들도 투자를 받아 예치해둔 자금을 더 크게 인출하고자 하는 수요가 커졌습니다. 실리콘밸리 은행의 파산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실리콘밸리 은행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실리콘밸리 은행은 1983년 웰스파고 은행원 로저 스미스와 스탠포드 교수 로버트 메디리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총자산 2,090억 달러 규모로 미국에서 10위권 정도의 금융 그룹입니다. 또한 유념해야 할 부분은 실리콘밸리은행은 단순히 스타트업이나 벤처캐피탈이 대출해주는 상업은행이 아니라 일종의 금융 그룹이라는 점입니다. 지주사 아래 은행, 투자사 즉 벤처캐피탈, 증권사를 모두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 아래 스타트업에 투자와 융자 및 투융자 복합의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었고, 스타트업들은 공급받은 자금을 일반적으로 실리콘밸리 은행에 다시 예치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자금 공급 아래 성장하여 회수 단계가 되면 실리콘밸리은행의 증권사가 주간사가 되어 IPO까지 책임지는, 벤처기업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종합적인 금융 서비스를 공급하던 혁신 은행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증이나 담보가 없으면 스타트업에 대출을 해주지 않는 국내 상업은행과 달리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하여 신주인수권을 일부 부여받고 보증이나 담보가 없는 스타트업에도 대출을 해준다는 측면에서 혁신적인 금융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자금 공급의 편리성으로 파산 전까지는 SVB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고객과의 관계가 좋았다고 합니다.
앞서 2021년 전 세계 벤처투자시장은 역대급 수치를 달성하였다고 서술하였는데, 이에 따라 실리콘밸리 고객사들의 예치금 규모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실리콘밸리은행은 급격히 증가한 예치금의 운용에 있어서 안전자산이면서 장기자산인 국채에 40% 이상을 투자하게 되는데, 이것이 향후 고금리 시대에 리스크관리 실패의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미국 국채는 만기까지 들고 있으면 무조건 수익을 보는 안전자산입니다. 아마 당시 국채를 사들일 때는 만기 전에 손해를 감수하면서 국채를 처분하는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연준이 시장의 예상을 훨씬 앞서는 급격한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스타트업, 특히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스케일업 또는 회수 단계의 기업들의 예금 인출 수요가 커졌고, 실리콘밸리은행은 예상보다 커진 스타트업들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 국채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자산을 매각한다는 소식은 고객들 사이에 공포로 퍼지면서 뱅크런이 발생하여 SVB는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즉 파산의 내부적 요인은 미국 국채와 같은 장기자산에 포트폴리오의 구성이 치우쳐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였다는 점이고, 그보다 근본적이고 가장 큰 요인은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한 미국 벤처투자시장의 빠른 축소 및 스타트업의 자금 경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과정에서 중대한 도덕적 해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 벤처투자시장도 미국처럼 급격한 감소를 경험했다면 그에 따른 나비효과로 어떤 일이 발생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2022년 고금리로 인한 모험자본시장의 조정기에 모태펀드가 시장의 연착륙에 기여한 측면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시장조정기에 민간 주도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모태펀드 예산이 줄어들었으며, 민간 모태펀드의 유인을 설계하여 시장의 추가적인 마중물 투여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모험자본시장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 시장의 주도권을 궁극적으로는 민간이 쥐어야 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다만 제도를 설계하면서 경제적 유인을 따라 움직이는 민간에 “마중물”이라는 역할이 어울리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 확장을 위한 마중물을 크게 만드는 것이 공공의 유인이 될 순 있지만, 민간시장 주체의 동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민간 주도로의 전환과 전방위적 민간자금의 유입을 유도하면서 경제적 유인에 의해 작동할 수 있는 보다 시장친화적인 방식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고금리로 인한 시장조정기가 장기화될 것을 고려할 때 민간 주도로의 정책 전환이 시장에 부정적 전망이라는 잘못된 신호로 전달되지 않도록 세심한 조정과 설계가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