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벤처금융 연구노트’에서 다룰 논문은 벤처캐피탈(VC) 투자자가 여러 경쟁 기업에 동시에 투자하였을 경우, 과연 투자받은 스타트업 혁신의 효율에 어떠한 영향을 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다. 이 논문의 데이터에 따르면 무려 39%의 스타트업들이 경쟁기업과 VC를 공유한다고 한다. 이렇게 경쟁기업과 VC를 공유하는 것은 스타트업들에 어떤 영향을 주고 VC들은 왜 경쟁기업들에 동시에 투자하는 걸까?
저자들은 2005년부터 2018년까지의 제약산업 스타트업들과 그들에게 투자한 VC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을 한다.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경쟁 스타트업 두 개가 VC를 공유할 경우 VC는 둘 중 성과가 낮은 기업에 팔로우온 투자를 하지 않고 혁신의 방향성을 바꿀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에 더블다운을 하면서 마켓파워를 키워주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더불어 혁신의 효율은 올라가지만 경쟁이 적어지므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함께 한다.
어떻게 보면 VC도 특정 산업군에서 전문성이 필요하고, 스타트업들도 그러한 전문성을 갖춘 VC가 필요하기에 한 VC가 경쟁업체인 두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더러 있다. 이럴 경우는 “사회적으로 혹은 스타트업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질문이다.
모든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없기에 둘 중 하나가 살아남게 되는 과정에서 VC가 어떠한 의사결정을 하고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효과가 있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만약 VC가 경쟁업체인 두 스타트업에 베팅을 하였고 둘 다 잘 될 경우 VC는 업계에서 1, 2위에 해당하는 기업에 투자한 투자업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고, 둘 중 한 스타트업은 비교적 성과를 못 낼 가능성이 크다. 저자들은 이럴 경우 VC들이 효율적 측면에서 보다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에는 팔로우온 펀딩을 하겠지만, 성과가 덜 한 스타트업에는 팔로우 펀딩을 제한하며 혁신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모델을 통해서 자신들의 가설을 보여주고, 여러 가지 메커니즘들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보다 성과가 적은 스타트업의 R&D 비용이 더 클 경우는 위에서 말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며, 두 경쟁업체의 기술이 비슷할수록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는 부분이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존재했던 제약산업 스타트업들의 1상 프로젝트들을 데이터로 활용한다. 총 481개의 스타트업들이 총 764개의 VC에게 투자를 받았다. 저자들은 시장을 나눌 때 질병군을 활용하여 78개의 질병군으로 나눈다. 스타트업 두 개가 한 질병군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면 그들을 같은 시장, 즉 경쟁업체로 가정한다.
저자들은 제약산업 데이터로는 Cortellis의 데이터를, VC 데이터로는 VentureXpert를 활용한다. 놀랍게도 총 39%의 스타트업들이 경쟁업체와 VC를 공유한다고 한다. 이는 예상보다 높은 숫자라고 생각했으며, VC 투자 단계에서는 독점 관련 규제가 없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저자들은 일반적인 회귀분석도 진행하지만 도구변수(Instrument Variable) 방법론을 통해서 조금 더 인과관계에 다가간다. 방법론을 간단하게 말하면 VC를 공유한 스타트업1과 스타트업2, 그리고 VC를 공유하지 않은 스타트업3과 스타트업4, 이 두 짝을 비교하는 식이다. 만약 스타트업1과 3이 1상에서 2상 임상시험으로 넘어가는 성과를 내었을 때 스타트업2와 스타트업4에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저자들의 가설에 의하면 스타트업2는 추가로 펀딩을 구하지 못하고, 다른 질병군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지만, 스타트업4에는 그런 효과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 이 논문의 주요 가설이다.
간단한 통계를 공유하면 경쟁자가 있는 질병군에서 한 개의 스타트업이 임상 2상에 도달하였을 때 성과가 뒤처져 있는 스타트업이 2상에 도달할 확률은 경쟁자가 없는 경우에 비해 1/4로 적었다. 그만큼 경쟁이 스타트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위에서 말한 총 39%의 스타트업들이 경쟁업체와 VC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통계들도 있다. 하나의 스타트업은 약 4.7개의 VC에게 투자를 받았고, 하나의 VC는 약 2.5개의 질병군에 한해서만 투자를 하였다. 그리고 한 개의 질병군에 투자한 VC의 평균 숫자는 16.4개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이 경쟁업체와 VC를 공유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비중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메인 가설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경쟁업체와 VC를 공유할 경우 성과가 부족한 스타트업은 다음 임상(2상)으로 넘어갈 확률이 표준편차의 약 0.53 배수만큼 낮아졌다. 이는 2개의 짝이 아닌 3개의 짝으로 분석을 진행해도 비슷한 트렌드를 보였다.
왜 그럴까? 저자들은 추가 분석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VC는 성과가 적은 스타트업에 팔로우 펀딩을 더 적게 하였다. 또한, 성과가 적은 스타트업의 경우 같은 VC에게 받는 팔로우온뿐만 아니라 다른 VC에게 받는 투자 확률도 줄어들었다는 것을 추가로 보여주었다. 2상의 비용이 더 큰 질병군일수록 위의 메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그리고 두 스타트업의 기술이 비슷할수록, 경쟁자가 없을수록 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VC의 공유가 성과가 적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질병군으로의 전략 변화의 가능성을 높이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VC는 같은 질병군 안에서의 중복 비용을 줄이고 혁신의 효율을 높인다고 분석한다.
이 논문의 결과를 단편적으로 해석하면, VC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잘 못하는 스타트업이 추가 투자를 못 받는 것 또한 시장 논리에 알맞아 보인다. 많은 시장이 ‘winner-take-all’ 시장이라면 최대한 빨리 될성싶은 스타트업을 가려내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잘하는 시장들을 VC들이 피해서 투자하며, 너무 이른 시점부터 경쟁을 지나치게 높여 스타트업들을 걸러낸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의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경고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제약산업에서 한 개의 약물이 있는 질병과 두 개의 약물이 있는 질병 간의 약가는 천지 차이이다. 따라서 규제가 심한 산업군일수록 경쟁이 줄어드는 것은 이중적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