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적극적으로 추진된 정부의 벤처생태계 조성 정책으로 창업·벤처기업 자금조달이 증가하고 다수 유니콘이 출현하는 등 우리나라 벤처생태계의 면모가 크게 달라진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간 벤처투자와 엔젤투자 등 창업기업의 자금조달이 크게 증가하였는데 벤처투자액은 2022년의 시장 위축에도 불구하고 2019년 7.5조 원에서 2021년 15.9조 원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동 기간 엔젤투자 규모도 개인투자조합을 포함하여 2019년 6,400억 원에서 1조 2,000억 원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한편 국내 유니콘 기업도 2022년 말 기준 22개사, 2019년부터 현재까지 선정된 예비유니콘 기업 수도 111개에 이르고 있는데1) 유니콘 기업 수만 보면 우리나라는 미국 651개, 중국 172개, 영국 49개, 독일 29개 등에 이어 글로벌 벤처강국이라 할 만한 수준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벤처생태계에 유니콘 기업이 나타나는 등 주요국은 스케일업에 정책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 규모 대비 유니콘 기업 수는 벤처생태계 강국 대비 아직까지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스케일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2022년 말 기준 주요국의 GDP 대비 유니콘 수는 1조 달러당 이스라엘 43.6개, 미국 26.0개, 영국 15.3개, 중국 9.4개인 반면 우리나라는 8.5개로 글로벌 벤처 선진국과는 약간의 격차가 있다.
2022년 중반부터 글로벌 공급망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VC를 포함한 대체투자 전반이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2022년 글로벌 VC 자금모집과 투자는 전년 대비 각각 30% 이상 감소한 가운데 국내 VC 시장도 2022년 4분기부터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하며 자금모집과 투자가 급감하였다. 연간 기준으로 국내 VC 자금모집은 벤처투자조합(이하 벤처조합)과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이하 신기조합) 합산으로 2021년 17.8조 원에서 2022년 17.3조 원으로 2.8%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으나2), 연간 투자 규모는 감소세가 2022년 중반 이후 두드러지며 2021년 15.9조 원에서 2022년 12.5조 원으로 21.8% 감소하였다.3) 2023년 들어서도 시장의 급격한 위축세는 지속되고 있는데 분기 통계가 공표되는 벤처조합만을 살펴보면 2023년 1사분기 자금모집액은 0.6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8%, 신규 투자는 0.9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7%가 감소하였다.
최근 벤처투자 감소는 투자 재원 부족보다 벤처기업과 투자자 간 가격 등 투자 조건을 둘러싼 이견으로 인한 투자의 일시적 공백이거나 변화된 투자 환경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투자 조건을 확인한 후 투자하고자 하는 투자자 의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벤처조합의 평균 만기를 7.8년이라고 하고 투자기간을 3년이라 가정했을 때 벤처조합의 현재 미소진약정액(dry powder) 규모만 해도 최소 10.3조 원으로 추산된다. 현재 상황은 벤처투자 시장의 주기적인 활황-침체 순환(boom-bust cycle) 국면 중 침체기 초입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으로 과거의 사례를 참조할 경우 대략 3년의 시간이 경과하면 시장 위축 직전 수준의 시장을 회복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은 금융위기로 인해 2009년 자금모집과 투자가 전년 대비 각각 62.2%, 24.8% 감소하였으나 2010년에 다시 전년 대비 67.2%, 16.1% 증가하며 회복이 시작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유럽 재정위기와 경기침체 우려로 2012년 자금모집과 투자가 각각 66.1%, 2.2% 감소한 바 있으나 이듬해 다시 99.0%, 12.3% 증가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글로벌 VC 시장의 위축과 관련하여 이러한 위축세가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하는 일각의 시각도 존재하는데 최근 4~5년간 급증한 자금모집과 미소진약정액, 이번 VC 시장의 순환국면에서 나타난 CVC, 헤지펀드, 뮤추얼펀드 등 광범위한 공·사모 및 전략적 투자자의 참여로 두터워진 투자자층, 그리고 과거 2000년대 초반 기술주 붕괴 시와 다른 스타트업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견조한 수요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결국 회복의 시기와 속도의 문제일 뿐 글로벌 VC 시장의 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향후 국내 VC 시장의 회복도 글로벌 VC 시장의 회복과 밀접하게 연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중기부와 금융위는 최근의 시장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금융 확대 및 민간 벤처투자 촉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였다.4) 동 제도개선 방안은 기업성장단계 별 자금 수요에 맞추어 정책금융, 정책펀드 및 R&D 자금을 합산하여 총 10.5조 원을 추가 지원하고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한도를 자기자본의 0.5%에서 1%로 확대하며, M&A 및 세컨더리 벤처펀드의 신주투자 의무를 폐지하고 M&A 벤처펀드의 상장사 투자규제를 완화하기로 하였다. 동 제도개선은 민간재원 확대와 벤처투자 시장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무엇보다 시장 침체에 대한 신속한 정책 대응을 통하여 정책당국의 벤처투자 시장 지원의 의지를 확인시켜주었다는 측면에서 시장참여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시장 회복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자본시장 영역이 그렇듯 벤처투자 시장도 활황과 침체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역동적으로 성장한다. 통상 시장 침체기에도 다음 투자 사이클을 주도할 산업이나 기술은 성장세를 지속하며 시장을 둘러싼 환경적 변화도 동시에 진행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벤처투자 시장의 침체기도 우리나라 벤처투자 시장의 내실을 기하고 시장참여자의 역량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벤처투자 정책적으로도 그간의 양적 성과를 바탕으로 질적 성숙과 추가적인 도약을 위한 정책적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 6대 국정목표의 하나로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벤처투자에 적용하여 본다면 ‘민간 중심’, ‘성장지원’, ‘정책금융 마중물 역할 강화’로 집약되며 ① 민간자본, ② 스케일업, ③ 정책펀드 역할 재정립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정책금융에서 민간자본으로, 스타트업 정책에서 스케일업 정책으로,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 정책에서 미래 산업·기술 지원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는 그간 벤처투자 정책의 근간이 되어온 정책금융의 역할이나 스타트업 정책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하에서는 3가지 방향의 각각에 대하여 서술한다.
벤처투자 시장 육성을 위한 공공 재원의 지속가능성이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벤처생태계의 자생 역량과 역동성을 제고해야 할 필요성을 고려할 때 민간 중심의 벤처투자 시장 조성이 필요하며 특히 민간 자본의 확대가 긴요하다. 그간 국내 벤처생태계의 성장과 발전에 공공 재원의 역할이 지대하였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모태펀드, 성장사다리펀드 등 정책금융의 비중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수년간 벤처투자 시장에 금융기관, 연기금, 공제회 등 민간자금이 유입되며 2016년 40.2%에 달하던 정책금융의 비중이 2022년 25.3%까지 낮아진 상황이나 정책금융은 여전히 벤처투자의 핵심 출자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공공 재원이 벤처투자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출자하는 해외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우리나라의 벤처투자 시장의 공공 재원 의존도는 높은 수준이다. 반면 벤처펀드의 주요 출자자인 연기금, 공제회의 비중이 여전히 낮고, 해외에서와 같이 대학기금, 재단, 국부펀드, 패밀리오피스 등과 같은 다양한 출자자 군의 적극적 출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진정한 의미의 민간자본 확대를 위해서는 그간 벤처투자 시장에 참여할 수 없거나 참여하지 않았던 다양한 국내 재원이 벤처투자 시장으로 유입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벤처투자 생태계 내 민간자본 확대를 위해 최근 도입된 민간 벤처모펀드의 역할이 기대된다. 민간 벤처모펀드는 자펀드에 대한 분산투자로 위험을 저감하고 민간 출자자의 선별능력 부족과 직접 출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투자기구이다. 국내에서 처음 경험하는 민간 벤처모펀드는 해외에서 1990년대 말부터 급성장하여 출자 측면에서 VC와 PE 자금모집의 10~15% 수준으로 성장한 바 있다.
민간 벤처모펀드 제도 도입의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 먼저 모펀드의 이중보수와 장기 출자 필요성 등 출자 매력도를 저해하는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한시적으로나마 모펀드 출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며 가능하다면 모펀드 출자금의 중간회수를 지원할 수 있는 장치가 바람직하다. 또한 벤처모펀드가 출자 가능한 자펀드의 유형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운용 자율성을 확대하고 스케일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편 자펀드에 대한 신규 출자뿐만 아니라 세컨더리 투자와 공동투자를 허용하여 민간 운용사의 운용 효율성과 수익성 제고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운용 자율성 제고를 통해 수익률을 제고하여야 만 신규 민간재원의 벤처투자 시장 유입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민간자본 확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스케일업 정책의 목적은 고성장 기업의 발굴과 기업 성장에 따른 대규모 자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태계의 조성이다. 스케일업 자금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① 대형 VC의 존재, ② 벤처대출 시장의 존재, ③ 기관·기업(CVC 또는 M&A) 참여, ④ IPO·장외유통시장이 필요하다.5) 최근 벤처투자법에 벤처대출이 도입되고, 공정거래법에 일반지주회사 CVC가 허용되는 등 스케일업을 위한 제도적 여건은 국내에 점차 조성되어가고 있으나 스케일업을 위한 제반 시장 환경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우리나라는 스케일업 확대의 초입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스케일업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인 VC의 대형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내 벤처투자의 양적 확대에 따라 벤처투자 펀드의 수는 많아진 반면 규모가 영세하고 후속투자 비중이 낮다. 2015~2021년 벤처조합의 평균 규모는 미국 1,898억 원, 중국 1,147억 원인 반면, 우리나라는 279억 원에 불과하다. 또한 벤처조합의 후속투자 비중이 2013년 53.2%에서 2021년 71.2%로 증가하며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2021년 미국의 92.6%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다.
무엇보다 스케일업과 유니콘 창출과 관련한 국내 벤처생태계의 가장 큰 문제는 창업 후기 대규모 지분투자를 수행할 국내 투자자층이 미약하다는 사실이다.6) 성장자본에 특화된 일부 PE가 벤처투자 생태계에 참여할 여지는 있으나, 최근 기술기업 투자가 활발한 해외 PE와 달리 우리나라 PE의 경우 대부분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내 유니콘의 창업 초기 이후 자금조달은 양호한 기업가치에 대규모 자본을 유치하기 쉬운 해외 대형 VC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해외 대형 VC는 유니콘 사업모델에 대한 이해와 글로벌 네크워크를 갖추고 유니콘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해외의 경우 대형 VC, CVC, PE뿐만 아니라 크로스오버 투자자로 불리는 자산운용사, IB,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국부펀드 등 다양한 후기단계 투자자들이 존재하여 이들이 대규모 후기단계 투자 및 Pre-IPO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업 성장 단계에 특화한 다양한 투자자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투자생태계 내의 분업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전술한 민간자본의 확대나 스케일업 자금공급의 필요성에 따라 정책금융의 역할도 변화해야 한다. 이는 그간 국내 벤처생태계 조성에 큰 역할을 담당해 온 정책금융의 무게중심이 일반적인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 정책에서 미래 산업·기술 지원을 위한 마중물 역할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된 정책금융의 마중물 역할은 국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미래 기술의 전략적 포지셔닝과 민관 공동노력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역할로 집약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의 기류는 유니콘을 다수 탄생시켰던 플랫폼 기반 벤처투자에서 기저기술과 같은 과학·기술 기반 벤처투자로 변화하고 있다. 구체적인 용어에 대한 정의는 다소 다를 수 있으나 국내에서는 초격차 기술, 딥테크(산업부·중기부), 국가첨단전략산업(산업부), 국가전략기술(과기부) 등의 용어로 불리며 관련 정부 부처에서 자금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주요국은 국가의 미래 기술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동 분야의 지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래 전략기술에 대한 투자는 민간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정부 역량 결집과 정책금융의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케어, 모빌리티, 친환경·에너지, 로봇, 빅데이터·AI, 사이버보안, 우주항공, 차세대원전, 양자기술 등을 포함하는 초격차·딥테크 분야는 잠재적 시장 규모는 크지만 시장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기술 불확실성이 공존함에 따라 매출 발생에 시간이 소요되고 R&D·설비 소요자금이 크기 때문에 기존의 벤처투자 모델과는 다르며 지식자본과 인내자본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된다. 따라서 민간투자의 확대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정책금융의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
벤처투자 관점에서 정책금융을 통한 동 분야 지원의 주요 수단은 정책펀드인데, 통상적인 정책 모펀드 구조보다 출자 규모와 만기가 확대된 구조를 활용하여 스케일업을 지원하는 형태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동 분야의 정책펀드를 설계할 때는 정책금융과 민간, 특히 산업자본과의 공동출자 또는 협업을 통한 제도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며 주요 기술별 모펀드 결성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러한 분야의 정책적 지원을 위해 다양한 부처가 참여하는 만큼 미래 산업·기술 투자 분야 및 대상 기업 발굴을 위한 통합 기업 정보관리 등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 협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