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금융레터

'23년 12월호

Market Watch

Vol.'23-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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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창업생태계의 현황과 과제

글. 김진환(서울경제진흥원 창업정책팀 수석)

딥테크의 대두 배경

딥테크(Deep Tech)라는 단어가 스타트업 씬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된 시기는 2022년 전후부터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전에도 기술 기반 창업에 대한 관심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OECD와 EU의 기준을 준용하여 경제적 파급효과가 높은 제조업과 일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정보통신업,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사업 지원 서비스업 등 지식 기반 서비스업)을 기술 기반 창업으로 분류하여 이 분야 산업의 육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2016년 전체 창업기업 중의 16.0%가 기술 기반 창업기업이었는데 2019년에는 17.2%로, 소폭이나마 증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1) 그러나 현재 기술 기반 창업기업에 포함된 ‘교육 서비스업’,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창작, 예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이 기술 기반 창업에 소속되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사실 기술창업에 대한 정의와 범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해 왔고 그로 인해 창업진흥원은 “기술창업의 정의 및 범위의 표준화 방안 연구”(2013)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기술 기반 창업의 육성을 위해 노력하게 된 배경에는 높은 생계형 창업 비중이 있었습니다. 생계형 창업은 보통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하는 비자발적인 창업으로 주로 저개발 국가에서 관찰되고 폐업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2) 음식점과 숙박업, 유통업, 단순 제조업 등이 생계형 창업의 대표적인 산업입니다. 스타트업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국내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나아가 산업 전반의 고도화를 꾀하는 정부 입장에서 생계형 창업의 비중을 줄이고 기술기반 창업에 힘을 쏟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또한 생계형 창업은 인력의 투입과 매출이 비례하는 경우가 많아 폭발적인 성장, 소위 말하는 J커브를 그리기 어려울뿐더러 스케일업(Scaleup)을 위한 해외 진출에도 많은 제약이 있다는 한계점을 갖습니다.

정부 차원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딥테크 스타트업은 쉽사리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제2차 벤처 거품”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스타트업의 수는 양적으로 크게 증가했으나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의 수는 기대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벤처 호황기에 우후죽순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은 O2O(Online to Offline)을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 서비스와 e-커머스 기업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 기업 CB Insights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현재 우리나라의 유니콘 기업은 총 14개 사로 비바리퍼블리카, 옐로모바일, 컬리, 트릿지, 위메이크프라이스, 무신사, 직방, 버킷플레이스, 리디, GP클럽, L&P코스메틱, 야놀자, IGA웍스, 메가존클라우드가 그 대상입니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기술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는 없겠지만 과연 이 기업들이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14개 사의 상당수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플랫폼 기업이거나 e-커머스, 혹은 B2C 소비재를 취급하는 곳입니다. IGA웍스 및 메가존클라우드와 같이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일구고 있는 기업이 최근에 추가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딥테크의 정의와 초격차 스타트업 1000+

그렇다면 이쯤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딥테크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딥테크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하이테크(High Tech) 분야로, 기술 활용을 위해 오랜 시간과 많은 자금이 소요되며, 다양한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을 말합니다. 보스톤 컨설팅의 보고서에 따르면 딥테크는 개발 초기단계의 기술로 시장개념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이로 인해 활용되기까지 상당한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보스톤 컨설팅은 합성 생물학, 인공지능, 양자기술, 드론·로봇, 블록체인 등을 딥테크 산업의 예시로 들었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증강현실, 가상현실, 로봇이 딥테크에 속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이투자증권은 인공지능, 바이오기술, 포토닉스와 전자공학, 드론·로봇, 첨단소재 및 나노, 블록체인, 양자 컴퓨팅을 딥테크 기술로 꼽았습니다. 국가와 발표기관에 따라 딥테크의 정의에 대해서는 다소차이가 존재하지만 딥테크의 중요성에 대해서만큼은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딥테크 산업을 스타트업 씬의 중심축에 둘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초격차 스타트업 10대 분야

위와 같이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는 딥테크 주요 기술 영역을 망라하여 딥테크 스타트업 영역에서의 메가 트렌드를 우리나라가 주도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고 보여집니다. 중기부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추가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혁신 분야 창업패키지와 딥테크 팁스(TIPS) 프로그램이 그것입니다. 혁신 분야 창업패키지는 창업사업화에 3년간 최대 6억 원을 지원해주고, 기술개발은 2년간 최대 5억 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입니다. 딥테크 팁스는 기술개발에 3년간 최대 15억 원, 창업사업화와 해외마케팅에 1년간 각각 1억 원씩을 지원합니다. 둘 다 업력 10년 이내의 초격차 분야의 창업기업이 대상인데, 혁신 분야 창업패키지는 그중에서도 5대 분야(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 모빌리티, 친환경·에너지, 로봇)의 기업만이 지원할 수 있습니다. 기존 지원사업에 비해서도 확연히 높은 수준의 지원 내용을 보면서 정부의 딥테크 스타트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생태계와 창업생태계의 조화

그런데 사실 저는 기존 창업생태계 관련 기관에서 크게 언급하지 않았던 시스템 반도체, 차세대 원전, 우주항공 분야가 초격차 스타트업의 영역으로 추가된 것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 기관에서도 이 분야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 산업을 초격차 스타트업의 영역으로 추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추측해 보자면 이 3가지 산업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그로 인해 거대한 산업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어 시장, 인재, 자본, 기술 등이 충분하기 때문에 스타트업도 발전할 수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의 낙수효과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싶습니다.

사실 투자되어야 할 자본과 기술, 인력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원한다고 해서 반도체 같은 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대기업의 공급망에 수많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포진해 산업생태계를 구성합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가량을 점유할 정도로 엄청난 위상을 갖습니다. 반도체 생태계에서 육성된 인재 중 일부가 스타트업을 세워 대기업이 미처 관심을 갖지 않는 틈새시장을 개척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신기술을 통해 대형 메이커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미 상장에 성공한 파두나 누적 투자 2,800억 원을 기록한 리벨리온 등이 대표적입니다.

우주항공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국방비는 2022년 기준 세계 9위이며 방산 산업도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군사 전문지 디펜스뉴스가 발표한 “2023년 세계 방산 100대 기업”에 따르면 한화가 26위, LIG넥스원이 52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56위에 올랐습니다. 100대 기업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현대로템이나 대한항공 역시 몇조 단위의 매출을 내고 있습니다. 방산 기술은 우주항공산업과 직결되며, 이곳에서 근무한 인재들의 일부가 결국 스타트업으로 투신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주항공과 함께 해양 분야가 포함되어 있는데 주지하다시피 조선 분야는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휩쓸고 있는 분야입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중국 기업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지만 기술 측면에서는 세계 1위인 영역입니다. 당연히 이곳에서도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인재들이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원전 산업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전력산업을 총괄하는 한국전력공사나 그 밑에서 기술개발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은 사실상 공공기관이며 핵심 설비를 제공하는 두산에너빌리티는 대기업입니다. 국가의 발전 정책과 맞물려 돌아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그동안 들어설 영역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전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이에 맞추어 유럽에서 시보그 테크놀로지(Seaborg Technologies)나 리드콜드(LeadCold) 등의 스타트업이 등장하면서 원전 설비용량 기준 세계 5위인 우리나라에서도 원전을 이용한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원자력연구원에는 7개의 연구소 기업이 설립되었고, 그중에서 2개 기업은 각각 딥테크 팁스와 팁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를 통해 딥테크 기술을 매개로 우리나라 산업생태계와 창업생태계의 결합이 보다 두드러지게 되었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10대 수출 품목은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 합성수지, 자동차부품, 철강판, 평판디스플레이 및 센서, 정밀화학원료, 선박해양 구조물 및 부품, 무선통신기기입니다. 크게 정리하자면 전기전자, 화학, 중공업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이 여전히 근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0대 수입 품목도 원유, 반도체, 천연가스, 석탄, 석유제품, 정밀화학원료, 반도체 제조용 장비, 컴퓨터,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순입니다. 큰 산업에서 큰 스타트업이 나오는데, 10대 수출 산업은 대부분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기술 산업입니다.

이 즈음에서 기존 스타트업 생태계 종사자들이 불만과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한때 스타트업의 핵심으로 촉망받던 O2O플랫폼, e-커머스, 핀테크(Fintech), 콘텐츠(Contents), 게임(Game), 화장품(Cosmetics) 등은 딥테크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딥테크 포함 여부와 무관하게 위 산업들은 이미 많은 투자를 받아 왔으며 현재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준 곳이 많고, 또한 이 분야에 새롭게 설립되는 스타트업이 많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게임 분야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10조 원을 훌쩍 넘겼으며 음악과 영화, 웹툰, 방송 분야의 성장세도 높은 편입니다. 핀테크는 국내에서의 투자 급감에도 불구하고 2030년까지 전 세계 기준 매년 20%의 성장세가 기대되는 영역입니다. 특히 금융은 신약, IT SaaS 산업과 더불어 “선진국형 비즈니스”로 불리는 대표적인 산업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조업 일변도의 산업정책은 옳지 못하다며 서비스 산업의 육성을 적극 주장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대표적인 산업이 금융입니다. IT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핀테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육성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딥테크에 대한 강조는 기존 창업생태계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큽니다. 이미 언급한 국내 유니콘 기업을 비롯해 스타트업씬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저는 한 언론사의 기고문에서 “B2C-마케팅-서비스업” 중심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 문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스타일입니다. 미국은 압도적인 세계 1위 소비 시장이며 영어권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 1위가 곧 세계 1위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높은 GDP 등으로 인해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 중심의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스타트업 역시 마찬가지여서 실리콘밸리의 문화와 용어가 전 세계 표준을 지배했습니다. 유니콘(Unicorn)을 비롯해 린 스타트업(Lead Startup), MVP(Minimum Viable Product), VC(Venture Capital), AC(Accelerator), Exit 등등의 용어는 대부분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졌거나 그곳에서 유행된 단어들입니다.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의 상당수는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국내에 이식함으로써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델은 국내에서 빠르게 한계를 보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만큼의 거대한 소비 시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보다는 많이 커졌지만 내수 시장만 바라보아서는 금세 성장의 한계에 도달합니다. 또한 해외 진출을 위한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서비스 산업은 인력과 언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영어는 기축 통화처럼 전 세계에서 공용으로 사용되지만 한국어는 그렇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해외 진출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과 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조차도 일본이나 동남아 시장에서 잇따라 철수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해외 진출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여전히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저는 그 대안으로 “B2B-세일즈-제조업” 중심의 창업생태계 구축을 제시했습니다. 딥테크는 이 3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산업입니다. 또한 기존 우리나라의 산업생태계와도 부합한다는 장점을 갖습니다. 모든 산업은 육성을 위해 자본, 인력,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중공업, 기계 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이며 관련 인프라와 노하우가 충분합니다. 수많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인재를 배출하고 있으며, 20~3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딥테크 중심 창업생태계를 위한 4가지 방안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딥테크 창업생태계가 더욱 발전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그간의 연구를 통해 크게 4가지 방안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첫째는 딥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구분 및 혜택 제공입니다. 지금 모든 스타트업은 자신의 비즈니스에 “테크”를 집어넣는 것이 유행입니다.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면 에듀테크(Edutech), 마케팅 서비스를 하면 마테크(Matech), 광고 관련 비즈니스를 영위하면 애드테크(Adtech)라는 식입니다. 하지만 종이컵 하나를 만들어도, 옷 한번을 생산해도 기술은 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첨단기술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기술평가를 통해 스타트업 기업 중 딥테크 기업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특허 등록 과정처럼 신규성, 진보성, 산업상 이용가능성을 두루 검토하여 딥테크 기업 여부를 판정해야 합니다. 요새 너도나도 AI 스타트업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기준을 통해 옥석을 가려야만 딥테크 씬의 물이 흐려지지 않습니다.

최근에 오리온 그룹이 5,000억 원에 인수한 레고켐 바이오 사이언스는 2006년도에 설립된 바이오 기업입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얀센에 2조 원이 넘는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제약 대기업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진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술을 갖춘 딥테크 스타트업을 잘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양적 성장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故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말씀처럼 “1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마음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또한 딥테크 기업이라면 굳이 지원 기한을 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나라 법률상 스타트업은 7년, 특정 기술 분야 기업은 10년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에 해당 기간은 너무 짧을 수 있습니다. 딥테크 기업에 한해 지원 기간을 늘리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강화입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국내외 대기업 및 중견기업과 국내 스타트업 간의 PoC(Proof of Concept : 기술 실증) 사업이 가장 보편적입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과의 기술 실증을 통해 자사에 부족한 점도 채우고, 또 전략적 투자자(SI : Strategic Investor)로서 투자 이익 취득, 경쟁사로의 인수합병 방지, 새로운 기회 선점 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유명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는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기회입니다. 기업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 신인도가 높아져 새로운 투자처나 매출처를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다행히도 그간의 성과가 나쁘지 않아 보다 많은 대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기왕이면 대기업 중에서도 딥테크와 관련이 높은 기술 기업이 참여하는 것이 스타트업에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현재 오픈 이노베이션 구조에서 몇 가지 개선해야 할 점들이 엿보입니다. 먼저 과연 국내 스타트업이 국내외 대기업을 상대할 정도의 역량을 갖추었는가 하는 문제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전 세계에 지사를 두고 있는 국내 한 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담당자는 “미국의 MIT에 용역을 줄 수도 있고, 프랑스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대기업 중에 한 곳도 조인트벤처를 제안하고 있는데 우리가 왜 굳이 세계 시장에서 검증도 되지 않은 국내 스타트업과 협력해야 하느냐”라고 냉정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사실 국내 오픈 이노베이션 사업의 경우 대기업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나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관점에서 수행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국내외 대기업과의 만남이 매우 희귀하고 소중한 기업임을 깨닫고 스스로의 기술적 역량은 물론 비즈니스 매너까지 잘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신규사업팀과 투자팀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로 인해 PoC 이후 대기업의 구매 활동이 매우 드문 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오픈 이노베이션 활동에서 스타트업의 상품을 구매할 가능성을 높이는 작업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셋째는 딥테크 스타트업 산실로서의 대학의 역할 강화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영미권 대학을 제외하고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 따르면 전 세계 5,000여 곳의 대학 중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7개 대학이 200위 이내에 들었습니다. 국제 논문 수 측면에서도 비슷한 위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특허 역시 최근에 기술사업화의 중요도가 인식되면서 매년 등록특허 수가 크게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대학은 그 사회 최고 엘리트가 가장 몰려있는 집단 중 하나입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이 다수 분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캠퍼스와 스타트업 사이의 거리는 먼 것으로 보입니다. 특허청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대학의 기술 이전료는 2021년 1,190억 원가량이었습니다. 반면 미국의 대학별 기술 이전료는 지난 2019년 기준으로 노스웨스턴대 3,047억 원, 펜실베이니아대 1,326억 원, 플로리다대 1,105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미국 개별 대학의 기술 이전료가 한국 대학의 기술 이전 총액을 능가한 것인데, 한국 대학이 경제적 가치가 작은 소규모 기술 이전에 집중하면서 이전 건당 수입은 미국과 20배 가까운 차이가 났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교육과 연구, 행정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기술사업화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교수들은 국내외 대학평가를 위해 각종 실적을 내야 하고 동시에 본인의 승진 등을 위해 논문을 제출해야 합니다. 여전히도 캠퍼스는 논문 위주의 KPI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딥테크 스타트업의 전진 기지가 되려면 KPI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컴퍼니 빌딩(Company Building)을 통한 인풋 강화입니다. 컴퍼니 빌딩이란 유망한 사업 분야를 지정하여 투자 유치, 경영진, 외부 전문가 등을 제공하여 특정 분야 스타트업을 인위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컴퍼니 빌더는 사업 초기에 스타트업의 경영에 참여하여 기업을 함께 운영하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패스트트랙아시아가 처음으로 컴퍼니 빌딩의 개념을 제시했으며 패스트캠퍼스, 패스트파이브, 푸드플라이, 헬로네이처 등을 설립하고 운영함으로써 실체화에 성공했습니다.

컴퍼니 빌딩이 중요한 이유는 딥테크 기술의 공백 영역을 채울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나라의 중추적인 산업 중 하나인 석유화학이나 첨단소재 분야의 스타트업은 손에 꼽습니다. 그런가 하면 서비스산업의 핵심인 건설 분야의 스타트업도 매우 드뭅니다. 또한 양자컴퓨팅 분야는 누구나 유망하다고 말하지만 아직 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인 스타트업이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공백 영역에서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컴퍼니 빌딩입니다. 다만 컴퍼니 빌딩을 누가 주도하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민간의 엑셀러레이터가 핵심이 될 텐데, 이 경우 막대한 자금과 핵심 인재의 조달을 그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정부나 공공기관의 자금이 상당 부분 투여되어야 할 텐데 이 경우에도 지분을 비롯해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딥테크 스타트업의 중요성과 현황, 향후 과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길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딥테크 스타트업을 통한 창업생태계 고도화를 선언했습니다. 딥테크 스타트업만이 해외진출과 스케일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께서도 대한민국 딥테크 스타트업의 도전을 열심히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 1) “기술기반창업과 정부의 창업 지원” (2020), 「과학기술정책」, 정도범, 3(2)
  • 2) 기업가의 창업동기와 고용창출에 관한 실증적 연구 : 서울시 창업기업을 중심으로” (2018), 「경영학연구」, 이윤숙‧이상준‧신호정, 47(4)
※ 본문의 견해와 주장은 필자 개인의 것이며, 한국벤처투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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