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실리콘밸리은행이 지난 3월 파산하였습니다. 현재까지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인한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직접적인 피해는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간접적인 영향력은 작지 않아 보입니다. 당장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커졌습니다. 올해 초 2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를 출범시키며, 은행권에 메기효과를 불러일으킬 스몰라이센스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었습니다. 그러나 신규 소규모 특화은행의 롤모델이었던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함에 따라 벤처·스타트업 대출 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던 일부 지자체의 계획2)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원인에 대한 면밀한 검토 결과를 제공함으로써 벤처·스타트업 대출 전문은행 설립 논의에 도움을 주고자 본고를 작성하였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규모 예금인출(뱅크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8일 실리콘밸리은행은 18억 달러의 유가증권매각 손실을 공개하고, 당일 저녁 무디스가 실리콘밸리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하락을 발표한 후 3월 9일 장이 열리자마자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합니다. 주가가 폭락하자 대규모 예금인출이 시작되고, 다시 추가로 주가가 하락하고, 추가 예금인출이 시도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날 하루에만 인출된 고객 예금이 420억 달러에 달했고, 10억 달러의 채무불이행이 발생한 끝에 실리콘밸리은행은 영업정지를 당했습니다.3)
실리콘밸리은행의 영업실적 악화는 사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대출 리스크 관리 실패라기보다는 투자 리스크 관리 실패에 기인합니다. 2022년 말 기준 실리콘밸리은행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대출 손실은 <표 1>에 나와 있듯이 총 6억 3,600만 달러입니다. 구체적으로 초기 및 성장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직접 대출인 투자자 종속 대출에서 2억 7,3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구분 | 2021 | 20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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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잔액(A) | 손실(B) | 손실 비율(A/B) | 대출잔액(A) | 손실(B) | 손실 비율(A/B) | |
글로벌 펀드 | 37,958 | 67 | 0.18 | 41,269 | 110 | 0.27 |
투자자 종속 | 5,544 | 146 | 2.63 | 6,713 | 273 | 4.07 |
혁신기업/기업 인수 | 8,471 | 118 | 1.39 | 10,575 | 155 | 1.47 |
맞춤형 개인금융 | 8,743 | 33 | 0.38 | 10,477 | 50 | 0.48 |
상업용 부동산 | 2,670 | 36 | 1.35 | 2,583 | 25 | 0.97 |
기타 기업 | 1,257 | 14 | 1.11 | 1,019 | 13 | 1.28 |
와인 및 기타 | 1,633 | 8 | 0.49 | 1,614 | 10 | 0.62 |
계 | 66,276 | 422 | 0.64 | 74,250 | 636 | 0.86 |
반면 실리콘밸리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미 국채와 모기지담보증권 평가 가치 손실은 <표 2>에 나와 있듯이 매도가능증권 손실 25억 3,300만 달러와 만기보유증권 손실 151억 6천만 달러를 합쳐 176억 9,300만 달러에 달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출 손실은 매도가능증권 손실의 25% 수준이며, 만기보유증권 손실까지 고려할 경우 총 유가증권 평가손실의 3.6%에 불과합니다. 2022년 미 연준이 2021년 1월 0.25%였던 기준 금리를 2022년 2월 4.75%로 급격히 인상함에 따라 보유하고 있던 국채와 모기지담보증권의 가치가 급락해 큰 손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연도 | 매도가능증권(Available-for-Sale) | 만기보유증권(Held-to-Maturit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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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 장부가 | 미실현평가손익 | 장부가 | 공정가 | 미실현평가손익 | |
2021 | 27,370 | 27,221 | -149 | 98,195 | 97,227 | -968 |
2022 | 28,602 | 26,069 | -2,533 | 91,321 | 76,169 | -15,160 |
즉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은 일부 세간의 주장대로 미국 금리상승에 큰 타격을 받은 스타트업의 부실화 영향도 있지만, 투자유가증권 손실이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 국채 투자 리스크 관리 실패가 과연 실리콘밸리은행만의 문제였을까요?
실버게이트 캐피탈의 파산은 실리콘밸리은행 고객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가져옵니다. 실버게이트 캐피탈은 암호화폐 산업을 대상으로 삼아 공격적으로 영업활동을 해왔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의 예수금 대비 투자유가증권 비율도 69%로 타 은행 대비 높았으나, 실버게이트 캐피탈의 경우 88%에 달했습니다(<표 3>). 그렇다면 다른 은행은 어떨까요?
연도 | SILVERGATE CAPITAL CORPORATION | SVB FINANCIAL GROU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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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유가증권(A) | 예수금(B) | 비율(A/B) | 투자유가증권(A) | 예수금(B) | 비율(A/B) | |
2019 | 931 | 1,815 | 51 | 29,072 | 61,758 | 47 |
2020 | 985 | 5,248 | 19 | 49,307 | 101,982 | 48 |
2021 | 8,693 | 14,291 | 61 | 127,959 | 189,203 | 68 |
2022 | 11,636 | 13,238 | 88 | 120,054 | 173,109 | 69 |
최근 연구4)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 은행은 기준 금리 인상을 대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표 4). 금리스왑을 보고해야 하는 은행들의 경우 자산 대비 금리스왑 비율은 0.9%, 보유 유가증권 대비 비율은 5.8%, 매도가능증권 대비 비율은 7.9%에 불과하였습니다. 실제 금리스왑을 체결한 은행들의 경우도 각각 3.9%, 24.6%, 32.6%에 그쳤습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헤징 정보를 제출한 은행의 경우는 5.4%, 36.1%, 44.9%로 다소 양호하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은행 자산 규모가 작을수록 금리스왑 또는 헤징 비율이 낮은 것입니다. 즉, 많은 은행이 기준 금리 인상에 속수무책으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으며, 규모가 작은 은행이 더욱더 큰 타격을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금리 인상에 더 취약했던 은행들이 기준 금리가 오르자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금리스왑을 팔거나 헤징 비율을 줄였습니다.
구분 | 100억 미만 | 100억~ 2,500억 | 2,500억 이상 | 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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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스왑 보고 의무 은행 | 자산 대비 금리스왑 | 0.7 | 2.2 | 3.1 | 0.9 |
유가증권 대비 금리스왑 | 4.6 | 13.7 | 16.8 | 5.8 | |
매도가능증권 대비 금리스왑 | 6.2 | 18.9 | 25.0 | 7.9 | |
대상 은행 수 | 1,129 | 146 | 13 | 1,288 | |
실제 금리스왑 체결 은행 | 자산 대비 금리스왑 | 3.9 | 4.0 | 3.7 | 3.9 |
유가증권 대비 금리스왑 | 24.6 | 25.1 | 19.9 | 24.6 | |
매도가능증권 대비 금리스왑 | 31.9 | 34.6 | 29.6 | 32.6 | |
대상 은행 수 | 206 | 79 | 11 | 296 | |
헤징 정보 증권거래위원회 재무 보고 은행 | 자산 대비 헤징 | 5.3 | 5.0 | 8.7 | 5.4 |
유가증권 대비 헤징 | 43.9 | 28.4 | 30.6 | 36.1 | |
매도가능증권 대비 헤징 | 52.2 | 36.6 | 46.9 | 44.9 | |
대상 은행 수 | 48 | 44 | 6 | 98 |
이 같은 배경에는 미 금융 당국의 규제 완화 기류가 있었습니다.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 의회는 2010 「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 약칭 Dodd-Frank법」을 제정하며 은행에 대한 시스템적인 규제를 강화하였습니다. 「Dodd-Frank법」은 자산 기준 500억 달러 이상의 은행을 대상으로 자본 적정성 기준을 강화하고, 예수금을 위험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하였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2018년 미 의회는 「경제 성장, 규제 완화 및 소비자 보호법」을 제정하며, 규제 대상 은행 기준을 자산 500억 달러에서 2,500억 달러로 상향하였습니다. 2019년에는 자산 규모 2,500억 달러 미만의 은행에 대한 유동성 요구사항(liquidity requirement)을 완전히 폐지하였습니다.
사실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기 이전인 2019년 미 연준은 이미 실리콘밸리은행의 위기관리시스템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주의 경고를 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적극적인 개입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원래 기준대로라면 자산이 2016년 447억 달러에서 2017년 512억 달러로 증가하여 심사 대상이었던 실리콘밸리은행이 2018년 심사기준 상향으로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은행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는 이전과는 달리 스마트 폰을 통한 신속한 계좌이체로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에 대한 공포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실리콘밸리은행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은행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실시간으로 주가에 반영되었습니다([그림 1]).5)
이 같은 현상을 재무학에서는 주식시장의 모든 정보가 즉시 주가에 반영된다는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은 한편으로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경제학 용어 중에 태양흑점 균형(Sunspot Equilibrium)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요인이 아닌 임의의 외부 요인(extrinsic random variable)에 의해 실제 결과가 뒤바뀌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근거 없는 풍문만으로도 기업은 단기간에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수적인 문화를 지닌 은행권은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에 뒤처지곤 합니다. 개인의 의사 결정이 초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금융기관의 대응이 시간 단위 또는 일 단위로 이루어진다면 실리콘밸리은행 채무불이행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벤처·스타트업 대출 전문은행이 인터넷 전문은행 형태로 설립된다면, 수신과 여신의 만기 불일치 이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우스갯소리로 3F(Family, Friends, Fools)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만큼 스타트업 생태계는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시장실패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들 간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해 나갔습니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은행은 신기술 컨퍼런스를 후원하며, 멋진 저녁 식사와 여행경비를 제공했습니다. 고급 와이너리가 실리콘밸리은행 대출의 1.6%를 차지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스타트업, 벤처캐피탈, 사모펀드의 경영진들과 실리콘밸리은행원은 주말에 나파밸리나 소노마밸리의 와어너리에 모여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습니다. 이때 맺어진 개인적 친분과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가 예금자보호한도를 초과한 금액 역시 보장하자 적지 않은 이들이 실리콘밸리은행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은 경기순응성이 크므로 벤처·스타트업 대출 전문은행이 설립된다면 경기침체 시 부실화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리스크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과거 금융위기 때 중소기업 전담은행으로 설립된 동남은행과 대동은행이 문을 닫았으나, 그 당시 대부분의 시중은행 역시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처음 설립될 때 이슈가 있었으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술진보, 기술효율성, 규모효율성 등 동태적 효율성에서 기존 시중은행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줍니다.6) 사전적으로 충분히 확보된 대손충담금은 중소기업의 경기순응성 해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7) 따라서 벤처·스타트업 대출 전문은행이 설립에 대한 논의는 높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