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1일 미국의 대표적인 디펜스테크 스타트업 쉴드AI가 무려 2,600억 원의 자금 조달을 알리며 기업가치 3.5조 원을 기록한 유니콘 기업에 등극하였다. 영화 다크나이트 제작사로 유명한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인 토마스 툴(Thomas Tull)이 이끄는 US Innovative Technology Fund가 라운드를 리드하고 캐시우드가 이끄는 아크인베스트먼트도 참여한 이번 투자는 한 때 스타트업 투자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방위 산업 분야가 이제는 실리콘밸리가 주목하는 고성장 섹터로 발돋움하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네이비씰에서 복무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브랜든 쳉(Brandon Tseng)이 전역 후 형 라이언 쳉(Ryan Tseng) 및 앤드류 라이터(Andrew Reiter)와 함께 2015년 설립한 쉴드AI는 처음부터 전장에서 필요한 '능동적인 지능형 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시작된 스타트업이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군집 작전 드론의 자율 운항 및 통합 관제를 수행하는 인공지능 플랫폼 하이브마인드(Hivemind)가 있다.
네이비씰에서 7년간 복무한 후 하버드MBA에 진학 예정이던 브랜든은 입학 이전부터 쉴드AI 창업을 결심하고 팀 구성과 초기 자금 확보에 나서게 된다. 자신의 군 복무 및 실전 배치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 상황에서의 신속한 상황 파악 및 의사 결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 브랜든은 처음부터 '국방부 및 군부대 납품'이라는 명확한 대상 시장을 가지고 쉴드AI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브랜든의 계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국방부 납품’이라는 가능성도 낮고 제한된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쉴드AI의 사업 계획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심지어 석유 시추 기업이나 상업용으로 대상 시장을 바꾸면 투자를 고려하겠다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았다. 2015년 시드라운드 펀딩에 나선 브랜든은 당시 20곳 이상의 벤처캐피탈로부터 퇴짜를 맞기도 하였다.
이때 브랜든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전투 시스템이 민간 시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군수 물자 조달 정책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미 국방부와 각 부대는 처음부터 군사용으로 개발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아니면 제품 채택에 극히 부정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브랜든은 자신의 사업 계획을 고수하며 MBA에 진학한 이후에도 꾸준히 사업 아이디어를 가다듬고 투자자를 찾아다니게 된다.
결국 브랜든은 1학년 말 쉴드AI가 추구하는 '오직 군사용 전투 시스템을 위한' 스타트업 아이디어에 공감한 파운더 콜렉티브(Founder Collective)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게 되고, 이들의 소개로 홈브루(Homebrew)와 블룸버그베타가 공동투자자로 합류, 쉴드AI는 사업 시작 1년 만인 2016년 5월 2백만 달러 규모 시드라운드 조달에 성공하게 된다.
쉴드AI의 주력 제품은 무인 전투를 가능하게 하는 AI 파일럿 소프트웨어 플랫폼 하이브마인드를 주력으로 작전에 투입되는 전투 전용 소형 쿼트콥터 노바, 그리고 수직이착륙 무인기로서 정보 수집, 탐색, 감시, 통신 릴레이, 상황 인식, 대상 추적 등 다양한 작전에 사용되는 V-BAT이 주력 제품이다.
하이브마인드는 전장에서 작전 수행을 위한 능동적 지능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요소 ① 센서 인풋 ② 추정 ③ 매핑 ④ 탐지 ⑤ 경로 확정 ⑥ 컨트롤 6단계 기능을 포괄하는 작전 수행 시스템이다. 2018년 미 국방부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DIUx를 통해 처음 납품에 성공한 하이브마인드는 현재 무인전투기 도그파이트 및 방공망 침투 등 다양한 작전에 사용되고 있다.
하이브마인드를 기반으로 운항하는 소형 쿼드콥터드론 노바는 GPS나 인간의 조정 없이도 작전 수행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최신 버전인 노바 2는 건물 내부 위협을 감지하고 이를 지도에 자동으로 전송할 수 있으며, 진동을 통해 위험한 환경에 투입되는 작전병들에게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며 3D 다층 지도를 작성하여 전장의 공통 작업 이미지를 형성하는 작업에도 사용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이브마인드를 기반으로 운행되는V-BAT는 Martin UAV란 스타트업이 처음 개발한 수직이착륙 무인기이다. 2021년 7월 쉴드AI가 해당 기업을 인수하며 현재는 쉴드AI를 대표하는 주력 제품으로 성장한 바 있다. 2018년부터 미국 남부사령부, 해안경비대 및 해병대를 비롯, 해외의 미국 작전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V-BAT은 정보 수집, 적군 감시 및 정찰 네트워크에 사용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전 세계 미 군함에 배치되는 것이 목표이다.
2019년 출시 이후 V-BAT은 총 17건의 미 해군 및 해병대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호주 국방부 등 해외 국가들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차세대 전투기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지상이 아닌 항공모함 출격 시험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수행 작전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쉴드AI를 포함하여 최근 미국에서 주목받는 6대 디펜스-테크 스타트업을 묶어 SHARPE (Shield AI, HawkEye 360, Anduril, Rebellion Defense, Palantir, Epirus)로 부르기도 한다. 특히 이미 시가총액 40조 원을 돌파한 팰런티어(Palantir), 그리고 비상장 기업으로 기업가치 10조 원을 넘어선 앤두릴(Anduril)은 디펜스-테크의 선두주자로 손꼽힌다.
호크아이360은 지상 RF 신호를 위성으로 수신하여 지구를 분석하는 스타트업으로, 2015년에 설립된 이후 파트너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축, 총 9기의 위성을 발사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위성은 3기 1세트 클러스터로 나뉘어 있으며, RF 신호의 지리적 위치 정보를 취득하는 아키텍처를 위해 설계되었다. 클러스터가 촘촘해짐에 따라 위치 정보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원리에 따라 현재 호크아이360은 7개 클러스터를 구성하기 위한 21기 위성을 개발 완료하여, 2024년 중반까지 이를 궤도에 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일반적인 지상 데이터 관측 기업들은 주로 화상 처리 위성을 활용하여 정보와 분석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호크아이 360은 보이지 않는 전자기 스펙트럼에 주목하여 선박용 무선기나 긴급 비콘이 발하는 RF 신호를 감시하고 분석함으로써 지상 데이터 분석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호크아이 360의 솔루션은 확장된 RF 신호 수집을 통해 중요한 조기 경보 레이더, 군사 활동, 해양 영역 인식, 무선 통신 및 RF 간섭 지표를 포함한 일련의 활동에 대한 상황 인식을 향상시킨다.
2015년 설립된 호크아이360은 현재까지 약 4,000억 원에 달하는 민간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올해 7월 블랙록의 리드로 진행된 시리즈 D 라운드의 경우 인사이트파트너스와 같은 민간 벤처캐피탈을 포함해 레이씨온, 에어버스, 록히드마틴 등 전통적인 방산 및 우주항공 기업들도 투자자로 참여하여 호크아이360과 전략적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에피루스는 거대 군집 드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고출력 마이크로웨이브(HPM, High Power Microwave) 무기체계인 레오니다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2019년 설립된 에피루스는 현재 미국 공군, 국방 고등 연구소(DARPA), 그리고 육군 R&D 연구소로부터 계약을 획득하였고 작년 1월에는 투자자 중 한 곳인 제너럴 다이내믹스 랜드 시스템과 협력하여 레오니다스를 미국 육군에서 사용하는 스트라이커 장갑 차량과 통합한 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에피루스는 2022년 2월 약 2,6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라운드를 진행하며 약 1.8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해당 라운드는 그로쓰 전문 투자자인 티로우프라이스(T.Rowe.Price)가 리드한 가운데 스텝스톤, 레드셀파트너스, 무어스트레트직벤처스 등 다양한 재무적 투자자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최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디펜스 스타트업은 바로 앤두릴(Anduril)이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보검에서 이름을 따온 앤두릴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에서 '제2의 스페이스X'로 가장 주목받는 국방 및 군수 분야 스타트업이다. 'AI를 결합한 실전 전투 장비'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첨단 기술로 무장한 무기 체계를 개발하는 앤두릴은 정부의 수주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지난 70년 간 이어져 온 군수산업의 룰에서 벗어나 '미래의 전쟁'에 적합한 무기를 먼저 개발한 후 정부에 선제안하는 방식으로 혁신을 이끌고 있는 기업이다.
앤두릴은 이미 2018년부터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와 협력하며 국경 지역 감시를 위한 보안관제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2020년에는 향후 5년 간 3천억 원에 이르는 수주 계약까지 체결하며 미국 국경 감시를 위한 숨은 조력자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영국 국방부, 호주 해군청과의 장기 계약까지 따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21세기 군비 경쟁 시장에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앤두릴의 창업자인 팔머 럭키는 VR 기기를 제작하는 오큘러스의 창업자로도 유명하다. 2014년 페이스북에 오큘러스를 매각하며 20대 초반에 성공한 창업자로 자리매김한 팔머는 2017년 앤두릴을 창업하며 ‘강력한 군사력과 기술적 절대우위’가 적들의 위험으로부터 우방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앤두릴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앤두릴은 2022년 12월 약 2조 원 규모의 시리즈 E 자금을 조달하며 10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유일한 비상장 데카콘 디펜스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피치북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벤처캐피탈들의 디펜스-투자 규모는 2017년 75억 달러 규모에서 2021년 405억 달러로 급증한 바 있으며, 벤처 혹한기가 이어지고 있는 2023년에도 11월 1일까지 집계 기준 269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과거에는 디펜드-테크 스타트업들의 수요처가 정부 기관으로 한정되었다면 최근 팰런티어, 앤두릴과 같은 관련 스타트업들은 민수 분야 매출도 상당한 수준이다 보니 순수 디펜스-테크가 아닌 듀얼케이스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늘어가는 상황이다.
2016년 6월 30일, 정부 기관 등에 인텔리전스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오던 팰런티어는 전격적으로 미 육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1994년 제정된 연방정부조달효율화법(Federal Acquisition Streamlining Act)에 의거, 정부 기관은 공공 입찰 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민간 솔루션을 적극 검토하고 입찰 시에도 이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성능이 낮고 가격이 비싼 기존 방산 업체에 계약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 소송의 주된 이유였다. 같은 해 11월, 연방 법원으로부터 승소 의견을 받아낸 팰런티어는 결국 2019년 약 1조 원 규모의 미 육군 분산공동지상체계(DCGS, Distributed Common Ground System) 구축 10년 계약을 따내며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다.
미국의 디펜스-테크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팰런티어와 같은 선두에 선 스타트업들이 정부 입찰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10년 이상에 걸쳐 소송을 불사하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후발주자인 앤두릴, 쉴드AI, 호크아이360과 같은 기업들이 정부 납품을 통해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길이 열린 것이다.
스타트업은 기존 전통 사업에 변화를 일으키며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고 한다. 이는 디펜스 분야 또한 예외가 아닌 것이다. 연간 900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국방부 예산 중 3분의 2가 여전히 록히드마틴과 같은 6대 방산 업체로 흘러 들어간다는 점에 비춰볼 때, 디펜스-테크 스타트업은 미국에서도 이제 막 태동기를 거쳐 성장기에 진입하고 있는 신흥 산업인 것이다.